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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백창원
사마디 랜드스케이프

백창원 2018-10-05 22:24:57 169

장마가 한창이던 지난 6월 어느 날, 밥 잘 사주는 부산형님 따라 태종사로 향했다.

부산 영도 태종사는 이맘때면 일본, 네덜란드, 태국 등 다양한 국가 30여 종 5천 그루의 수국이 만개하여 화려한 빛과 향을 뽐낸다고 한다.

대단한 규모의 수국들은 태종사가 지난 40여년간 직접 가꾸어 온 것들로 특별히 안개과 버무려진 수국풍경이 아주 그만이라는데,

부산형님은 멀리 멀리서 찾은 동생의 올해 운수가 아직꺼정 남았는지 여부를 테스트해보자며 짖궂은 농을 던진다.

 

 

평일이었던 터라 방문객이 많지는 않았으나,

몇 안되는 그들은 대부분 커다란 카메라에 길쭉한 마크로렌즈에다 어떤이는 플래시까지 장비한 것을 보면

태종사는 과연 아름다운 수국에 힘입어 꽃사진 촬영의 명소구나 싶었다. 

우리는 ‘태종사 입구’라는 간판을 확인하고는 그곳을 기점으로 꺽어올랐다.

입구에 한 노신사는 스쳐지나는 우리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 붙잡아 세우고는

올해 수국 개화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로 시작해 수국은 꽃처럼 보이는 이것이 실제로 꽃이 아니라 꽃받침이라는 둥 이런저런 장황설을 펴기 시작했다.

입구에 서서 절 안쪽을 힐끗 올려다보니 안개가 자욱한 풍경에 솔직한 마음 같아서는 곧장 말허리를 자르고는 안쪽으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고개 끄덕여가며 몇 분간의 말씀을 더 들은 후에나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수국들 사이를 비집고 나있는 좁은 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면 숲 속 작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저편에서 ‘사마디 불상’이 마중 나오셨다.

이 불상은 1983년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기증받은 성보인데 사마디는 삼매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매라 함은 ‘잡념을 떠나서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지’이고,

이 경지에 이른 자는 비로소 바른 지혜를 얻고 대상을 올바르게 파악하게 된다고 한다.

이미 나를 꿰뚫어 본 듯 은근한 미소의 사마디 불상 어깨 위로 커튼처럼 내려진 희뿌연 안개가 부처의 광휘만큼이나 눈부시다. 

 

 

우리는 대웅전과 산신각 주변을 휘하고 한번 돌아본 후 짙은 안개 속에서 더욱 신비감을 뽐내는 수국정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은 꽃들이 서로 옹기종기 붙어모여 한 송이의 커다란 꽃을 이루는 수국은 흙의 산도에 따라 꽃 색깔이 달라져 '살아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불릴만큼 아주 독특한 생리를 가진다.

처음에는 흰색 꽃을 틔웠다가 뿌리 내린 흙이 산성이면 푸른색 꽃을, 토양이 염기성이면 붉은색 꽃을 피운다.

따라서 뿌리가 뻗은 방향이 다르면 하나의 줄기에서 여러 색깔의 꽃이 피기도 하는데, 이러한 성질을 이용하여 토양에 첨가제를 넣어 꽃색을 원하는 색으로 바꿀 수도 있다.

 

 

절 마당에 갖가지 색으로 만개한 수국을 보며 이것이야 말로 중생의 삶을 꼭 빼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시적인 기분과 감정, 혹은 주변의 시선과 평가에 휩쓸려 붉으락 푸르락 우리네 표정과 말투는 하루에도 몇번씩 변화무쌍하다.

게다가 두터운 번뇌에 휩쌓인 우리 마음은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스스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곤 한다.

화려한 색과 글래머러스한 볼륨을 자랑하는 커다란 꽃 또한 실은 생식기능이 없는 꽃받침일 뿐인 것은 ‘보여지는’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지금 우리의 민낯을 그대로 비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순간 태종사 초입에서 만났던 사마디 불상의 장엄한 자태를 환기하였다.

일찌기 번뇌의 고리를 끊으신 세존께서는 모든 물질적인 것은 공허하며 공허한 것은 유형의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변화하는 세상사 눈 앞의 마음을 더럽히는 욕망과 집착을 버려야 비로소 ‘바른 지혜를 얻고 대상을 올바르게 파악 할 수 있는’ 삼매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설파하셨던 것이다.

 

 

내려오는 길 한 켠에선 신도회 부녀들이 부추를 손질하고 있었다.

부처의 가피를 기원하는 보살들의 공양손길은 활짝 핀 수국만큼이나 풍요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사마디를 향한 풍경이 바로 이곳이라는 생각을 뒤로한 채 태종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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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l taken with rollei35se and kodak portra 400 color fi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