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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백창원
가을걷기

백창원 2019-01-14 10:41:30 117

 

 

적어도 격월에 한번은 처가댁을 찾는다.

경산 처가댁이 포항과 가까운 덕도 있지만 본가와 처가의 무게가 서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처가에는 십년 전 돌아가신 친할머니와 동갑이신 장조모님께서 백세를 바라보며 정정히 계셔서 손자된 마음으로 내왕하게 된다.

그렇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던가. 지난해부터 부쩍 시들어가는 얼굴과 굽어가는 허리를 보며 무정한 세월이 야속할 따름이다.

 

 

 

여느 때처럼 손맛 좋으신 장모님표 점심 한상 대접받고 나니 장인어른은 마실 나가시고 아내는 전화로 못다한 정담을 나누려 장모님을 안방으로 연행해 들어갔다.

이로서 거실 테레비와의 독대시간이다.

시덥잖은 예능이나 SNS로 시간을 죽이기는 아까운 계절인 탓에 무작정 동네 한바퀴 돌아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넓직한 평야에 기름진 땅을 품은 경산은 역사시대 이전부터 사람의 거주가 많았다고 한다.

이곳에 터전을 두고 사는 이들에게는 ‘한들’로 불리고 있을만큼 너르고 평평한 땅이 농사짓기 안성맞춤인데다 지난 십년동안 처가를 드나들며 큰 바람이나 물 때문에 피해보는 일을 별로 목격하지 못했으니 옛사람이건 요새사람이건 살기 좋은 동네임에는 틀림이 없다. 

 

 

 

계절의 신호등이 조만간 겨울의 빨간등으로 바뀔 것임을 경고하듯 은행나무 가로수길은 온통 노란색이다.

늦가을 바람치곤 꽤나 한기서린 바람에 잠바 지퍼를 끝까지 채워올리며 영남대학교 캠퍼스로 접어들었다.

활주로 입구만큼이나 넓은 정문을 지나 학생회관, 중앙도서관 그리고 인문대학을 거쳐 야구장과 출판부 건물을 둘러본 후 이과도서관 쪽으로 해서 한바퀴 돌았던 것 같다.

 

 

 

한들에 위치한 캠퍼스답게 대체로 편평하여 산책하기 안성맞춤이다.

길고양이 서너마리를 만났고 멀리서도 선명한 화이트드레스를 입은 웨딩촬영팀을 지나치기도 했다.

가을 단풍잎들은 타고난 채도를 있는 힘껏 발현하고 있었기에 셔터는 쉴새가 없다.

 

 

 

마지막 기착지였던 이과도서관에서는 무엇인가에 흡인되듯 실내 열람실로 들어서게 되었다.

쌀쌀한 바깥공기와 달리 열람실 특유의 약간 답답하고 밀도감 있는 공기가 폐부속으로 스며들자 그 익은 냄새로 인해 하릴없이 나의 대학생 시절은 강제환기되었다.

책을 읽기보단 주로 레포트나 시험공부를 위해 들렀던 도서관이었다.

늘 사람들로 붐비는 도서관은 자리 하나 편히 빌려앉기 쉽지 않은 일종의 경쟁과 서바이벌의 장소였고 CCTV 또한 넉넉치 않았던 당시는 소지품에 대한 불안은 늘 함께 해주시던 그런 시절이었다.

개운한 공기가 그리워져 지나치게 무겁고 엄숙한 열람실을 빠져나왔다.

허벅지가 약간 묵직한게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된 모양이다.

출출한 마음에 장모님 맛깔난 저녁 반찬을 기대하며 처가댁으로 돌아가는 최단거리를 채택하였다. 

 

 

 

걷다 서고 가끔 뒤돌아보기도 하고 열린 건물 안을 기웃거리며 추색(秋色) 물든 캠퍼스를 산책하는 여유로움은 나이가 들고나서야 비로소 맛볼 수 있는 낭만인듯 싶다.

물론 캠퍼스의 파릇파릇한 청춘들에게는 그저 칙칙한 동네 아저씨의 궁상맞은 모습이었겠지만 말이다. 

 

 

 

 

 

 

 

 

 

 

 

 

 

 

 

 

 

 

 

 

 

 

 

 

 

 

 

 

 

 

 

 

 

 

 

 

 

 

 

 

 

 

 

 

 

 

 

 

 

 

 

 

 

 

 

 

 

 

 

 

 

 

 

 

 

 

 

 

 

 

 

 

 

 

 

 

 

 

 

 

 

 

 

 

 

 

 

 

 

 

 

 

 

 

 

 

 

 

 

 

 

 

 

 

 

 

 

 

 

 

 

 

 

 

 

 

 

 

 

 

 

 

 

 

 

 

 

 

 

 

 

 

 

 

 

 

 

 

 

 

 

 

 

 

 

 

 

 

 

All taken with leica m6, summicron-m 35mm 4th and agfa vista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