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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창원
감실부처

백창원 2019-02-07 18:11:04 84

밤 사이 도둑비는 아침 풍경을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뻣뻣한 목과 어깨는 휴식을 요구하는 몸의 신호이겠지만 얼마전부터 마음에 두었던 경주 부처골로 차를 몰았다. 


유홍준 교수는 “경주에 있는 수백, 수천가지 신라 유물 중 나의 마음을 언제나 평온의 감정으로 인도하는 유물은 감실부처님”이라 할 정도니

부처골에 계신 그 님을 꼭 한번 알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선덕여왕릉을 지나 사천왕사지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빠진 다음 화랑교 건너 다시 우회전,
옥룡암 들어가는 탑골입구에서 다시 300여 미터를 나아가면 불곡 입구다. 


적당한 공터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보니 네*버 거리뷰로 봤던 이미지와 주변 지형지물들이 겹치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곧이어 숲 속으로 이어진 산길을 따라 남산의 품속으로 들어섰다. 

 

 

 

 

 

먼저 다녀간 유교수는 당시 관광안내판 따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탓에 한참이나 남산 자락을 헤맸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감실부처님과의 첫 만남에 실패했다며 후일 방문객들을 위해 “울창한 대숲이 보이면 다 온 것”이라는 길찾기 팁을 답사기에 남겨두었는데,
과연 안내표지판 따위가 없었다면 대숲에서 꺾어 올라가는 길을 찾기란 쉽지 않았을 성 싶다. 


그때와 달리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방부목 데크로 계단까지 짜놓았으니
감실부처 가는 길을 지나쳐버릴 위험은 크게 낮아졌음과 동시에 꽤나 가파른 경사였음에도 손쉽게 오를 수 있었다.  

 

 

 

 

 
언제 도착하려나라는 막연한 마음으로 울창한 대숲을 벗어나는 순간 메두사와 눈이라도 마주친 듯 나는 그 자리에 석상과 같이 굳어버렸다. 


경이의 순간은 놀람에 들이키는 들숨처럼 순식간에 가슴 속으로 짓쳐 들어오는 것인가. 
 

홀연히 나타난 감실 속 부처는 피안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천상의 미소를 띈 채 결가부좌하고 계시었다.

  

 

 

 

 

 

몸가짐을 바르게 한 후 몇 걸음 다가가 삼배의 예를 올렸다. 


그곳은 자연석 바위를 파서 감실 속에 부처상을 모셔 일종의 석굴사원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7세기 전반 신라문화의 중흥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감실부처의 정식 명칭은 경주 남산 불곡 마래여래좌상인데,
경주사람들에게는 할매부처로 불리며 이 불상으로 인해 계곡 이름 또한 부처 골짜기가 되었다 한다. 


조형적 아름다움과 미술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일찌기 보물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지극한 아름다움은 이내 곧 간절한 관심을 일으켰다. 


옆모습이 궁금하여 우측으로 잠시 돌아보았다. 


넉넉한 인심의 국밥집 아주머니 같은 정면과는 달리 측면의 표정은 한없이 앳되고 가녀린 소녀같은 모습이다. 


푹신한 베개를 괸 채 감실벽에 기댄 얼굴은 포근한 어미 품에 안겨 곤히 잠든 아가의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삼국통일에 즈음하여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당시 신라인들은 남산자락 커다란 화강암에 감실을 파내고
부처의 얼굴로 다름 아닌 평화로운 아가의 미소와 숭고한 어미의 품을 새긴 것은 아닐까.

 

 

 

 

 

 

오랜 세월 제단으로 기능했을 감실 앞 편평한 자연석을 조심스레 올라 친근한 거리로 마주앉았다. 


감실 테두리 주변의 촉촉한 바위를 더듬고 바위 틈 이끼의 냄새를 맡으며 천년의 세월을 짐작해 보지만 알량한 나로서는 어림이 없다.

 

 


 

 


가인과의 독대라는 사치의 시간도 이제 그만.


헤어지는 연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눈코입 하나씩 뜯어보는 마음으로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세상 모든 질서와 평화를 머금은 듯한 그 미소를 담아내기에 필름유제층은 너무도 얇디얇다.

 

 


All taken with leica m6, summicron-m 35mm 4th, ilford h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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