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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Starless
굿바이 바간

Starless 2019-01-29 14:03:11 177

"아난다여, 슬퍼하지 말라, 탄식하지 말라,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 대반열반경

 

 

바지 두 벌이 든 깜장비닐봉지를 바이크에 걸어두고 짯빈뉴로 향했다. 밭을 갈던 농부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사원과 멀찌감치 떨어진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니 커다란 바구니를 이고 가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우리네처럼 목으로 바구니를 지탱하고 걸어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아주머니가 멀어질때까지 눈으로 좇다 거대한 사원 안으로 들어섰다. 겉으로 보기와 달리 내부는 소박했다. 네 방향의 부처를 뵙고 잠든 아이를 멍하니 보다가 사원을 나섰다.

 

 

 

 

 


 

 

 

 

 

 

 

 

사원을 나와 맞은 편을 보니 아까는 발견하지 못한 작은 사원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사원들처럼 거대하지 않았지만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계단 위로 물동이를 옮기는 사람들을 따라 올라갔다. 소박한 사원이었다. 아마도 현지인들을 위한 사원이겠다.

 

 

 

 

 

 

 

 

바이크로 돌아가 떠날 채비를 하는데 문득 마차 한 대가 지나쳐갔다. 역시 마차를 빌릴 걸 그랬나, 발장구를 치며 비스듬히 기댄 관광객들의 모습이 편안해보였다.

이라와디강을 볼 수 있다는 부파야파고다까지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부파야는 바간에서 가장 오래된 파고다로, 서기 300년 경에 세워졌다고 했다. 작은 규모였지만 강을 배경으로 한 황금탑이 아름다웠다. 난간에 기대어서자 강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문득, 양곤의 보더따웅이 생각났다.

 

 

 

 

 

 

 

 

 

 

 

 

 

 

바간 유일의 인도식 사원이라는 마하보디파고다에도 들렀다. 사원 외부를 장식한 간다라식 부조를 들여다보다, 유쾌하게 인사를 건네는 젊은이들에게 손을 흔들고 아난다사원으로 향했다.

 

 

 

 

 

 

 

 

 

 

 

바간황금궁전을 지나는데 길가에 아이들이 모여있는게 보였다. 다가가보니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든 남자가 아시크린! 아시크린! 묘한 발음으로 호객을 하고 있었다. 하나를 청해 받고 보니 아이스크림은 인도산, 이름이 무려 ‘MODERN ICE’였다. 근대적인 맛은 어떤 맛을 말하는 걸까, 어쩐지 아스트랄해진 기분으로 빠르게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바이크로 돌아갔다.

 


미얀마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아난다사원은 12세기에 세워졌으나, 대지진으로 붕괴된 후 1975년 재건되었다고 한다. 네 방향으로 9.5m 높이의 부처를 모셨고, 수많은 부조와 장식품으로 가득한 내부 뿐 아니라 경내에서 바라보는 사원의 외관도 무척 아름답다. 아난다사원이 유명한 또 하나의 이유는 남쪽 방향으로 모신 부처 때문인데, 멀리서 볼 때는 온화하게 미소짓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근엄한 표정으로 변하는 부처님이다. 예전에는 왕과 귀족들만 사원 출입이 가능했다니 가까이서 보는 왕과 귀족들은 엄격한 얼굴을, 멀리 떨어져 볼 수 밖에 없는 백성들은 자비로운 부처님의 얼굴을 본 셈이겠다.

 

 

 

 

 

 

 

 

 

 

 

 



미얀마에 와서 워낙 많은 탑과 사원을 본데다 슬슬 더위에도 지치기 시작한 참이었다. 아름다운 사원이었지만 큰 감흥없이 남쪽 방향의 부처를 뵈러 갔다. 멀리서 한 번, 다가가서 한 번 보니 과연 얼굴이 달라보였다. 거대한 발 밑에 자리 잡고 앉아 잠시 쉬는데,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닦아도 닦아도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마음이 무너져내린 것처럼 오열하고 말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가족들,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 할머니, ...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야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내가 조금 진정된 것 같자, 뒤쪽에서 보고 있던 남자가 다가왔다.

어디에서 오셨나요?
한국에서 왔습니다.
그 예법은 우리식과 다르군요.
미안합니다, 한국식입니다.
괜찮습니다. 혹시 금박으로 예를 올리고 싶으신가요?
가르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남자는 끈으로 묶인 금박 포장 하나를 꺼내 조심스레 금박을 떼어내더니 부처의 발에 붙여나갔다. 이렇게 하는 겁니다. 남자에게서 금박 두 개를 받아 하나의 포장을 풀고 부처의 발에 붙였다. 다시 예를 올리며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오래오래 사실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남자는 묵묵히 뒤에서 기다리더니 사원 안내를 자처했다. 고맙습니다만, 지금은 이곳에 머물고 싶군요. 남자는 미소짓고 자리를 떴다.

 


그후로도 한참을 앉아있었다. 근엄하게 내려다보는 부처의 얼굴을 올려다보다 억겹의 금박으로 덮인 발과 작은 불상들을 바라봤다. 금박을 붙여나갔을 사람들의 절실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 목이 메었다. 오랫동안 머물고 나서야 간신히 일어섰다. 가보겠습니다.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사원 밖에서 다시 인사드렸다. 부처는 인자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마지막 일정으로 슈웨지곤파고다로 향했다. 작은 슈웨다곤이라 불리는 슈웨지곤이라면 바간의 마지막 파고다로 어울릴 것 같았지만,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입구는 상점가를 방불케했고 경내는 쇠락한 분위기였다. 바간의 다른 파고다나 사원보다 화려한 곳이었지만 어딘지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입구의 아주머니들은 신발을 보관해준다며 은근히 기념품을 떠넘기려는 눈치였다. 투닥거리다가는 바간에 대한 인상마저 나빠질 것 같아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를 피했다.

 

 

 

 

 

 

 

 

 

 

 

 

 

 

 

 

 

 

 


첫인상이 좋지 않았으니 경내의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슈웨다곤을 가자, 물도 붓지 않고 경내를 한바퀴 돌고  바이크로 돌아갔다. 문득 어제의 일몰언덕 노점상 아주머니가 생각났다. 그래, 거기 가서 좀 쉬어야겠다.

 

 

 

 

 

2번 국도를 되짚어 일몰언덕으로 향했다. 슈웨지곤을 건성으로 본 덕에 시간이 남았다. 슈웨지곤을 바간의 마지막 인상으로 남기고 싶지 않아 틸로민로 사원으로 향했다. 틸로민로는 ‘우산의 뜻대로’라는 의미로, 하얀 우산을 날려 왕위 계승자를 정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바간에서 두번째로 높은 사원이어서 테라스 풍경이 아름답다는데, 지진 이후 계단은 모두 접근이 금지되어 있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경내를 걷고 사원을 떠났다.

 

 

 

 

 

 

 

 

 

 

 

 

 

 

 

 

 

 

 


2번국도를 지나다 한 떼의 소 무리를 발견했다. 한참 풀을 뜯더니 인도를 따라 유유히 걸어가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소를 치는 아주머니께 카메라를 들어 보이자 고개를 끄덕이셨다. 무리 사이로 들어가 풀을 뜯는 녀석들과 잠시 시간을 공유했다.

 

 

 

 

 

 

 

 

 

 


일몰언덕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술라마니사원에 들렀다. 12세기에 세워진 수많은 벽화를 간직한 사원은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통로를 따라 걸으며 부처를 뵙고 벽화를 음미하며, 마지막 바간의 사원을 눈과 머리에 새겨넣었다.

 

 

 

 

 

 

 


일몰언덕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다. 아주머니는 어제처럼 작은 테이블과 의자를 내주시고 마른 수건으로 캔을 슥슥 닦아서 주셨다.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고맙습니다.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한쪽에 자리잡고 물과 탄산음료를 마시고 있으니 전통 복장의 젊은 여성이 다가왔다. 네임택을 보여주는데 관광청 소속 공무원인 것 같았다. 퍼미션을 보여주시겠습니까? 가방을 열어 보여주자 좋은 시간 보내세요, 예의 웃음이 돌아왔다. 따라 웃다보니 문득, 헐, 혹시 드론 못띄우게 하면 어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물어볼까? 그랬다가 빼도박도 못하게 못띄우게 하면? 주변을 둘러보니 딱히 드론 금지 표지판은 없는 듯 했다. 일단 상황을 봐서 내리라면 내리자 결심했다. 공무원님은 몇몇 관광객을 불심검문하시더니 결국 퍼미션이 없는 관광객을 찾아낸 것 같았다. 뭔가 얘기하더니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일몰이 가까워지자 노점상 아주머니의 딸이 바이크를 타고 나타났다. 멀리서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들며 아는체를 했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고 언덕으로 올라가니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느새 돌아온 공무원님도 아이들의 장난을 받아주며 해지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빛이 사람들의 얼굴에 내리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드론을 띄웠다.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기대했던 만큼 훌륭한 일몰은 아니었다. 여전히 남아있는 구름 덕에 극단적인 색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붉어지는 하늘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위로받는 것 같았다. 결국 바간의 일몰은 제대로 보지 못하는구나, 다시 와야겠구나, 바간을 몇 번이나 오게 될까, 궁금해졌다.

 


해가 지고 바이크로 돌아가다 보니, 노점상 모녀는 그 사이 집에 간 것 같았다.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해가 진 하늘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둘러 바이크를 모는데, 갑자기 펑, 뒷바퀴 타이어가 펑크나버렸다. 헐. 이걸 어쩌나, 억지로 타다 끌다 하면서 2번국도까지는 나왔는데, 조금 달리려하면 여지없이 넘어져버렸다. 이러다가 아무래도 사고나겠다 싶어서 결국 샵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샵에서는 상대가 누구인지 관심은 없는 것 같았다. (네, 접니다. 바이크 두 대 해먹은 그놈이죠.) 구글맵으로 위치를 확인하고 알려주니 20분 쯤 지나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 배터리 나갔다면서? 어, 아냐, 타이어 펑크야. 어? 배터리라고 했잖아. 아냐, 타이어라고 했어. (배터리와 타이어가 발음이 비슷한가?) 어... 그럼 우리 아버지를 부를게. 좀 있어봐. 젊은 남자는 쿨하게 사라져버렸다. 조금 기다리자 이번에는 나이든 남자가 나타났다. 타이어가 펑크났다면서요? 네, 그렇습니다. 일단 이걸 타고 가시죠. 나이든 남자는 타고 온 바이크를 내주더니 펑크난 내 바이크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걸 어째야 하나라는 표정이었다. 매우 미안하고 난처해져서 허둥지둥 인사한 뒤 숙소로 향했다. 결국 네 대째의 바이크였다. 이것 참 민폐네. 한숨이 나왔다.

숙소에 도착할때 쯤 이메일이 도착했다. 예약해둔 곡테익열차표가 확정되었으니 숙소 정보를 남겨달라는 거였다. 만달레이 숙소를 보내주고 시계를 보니 저녁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미얀마 사람들도 야근을 하는구나. 어쨌든 내일은 만달레이네. 어제 사온 맥주 두캔을 마시고 조금 일찍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