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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Starless
깐도지 호수

Starless 2018-11-16 18:10:24 96

벌써 십여년 전, 난생 처음 외국에 가면서 구입한 첫 가이드북은 론리플래닛이었다. 그때만해도 국산 가이드북 품질이 좋지 않았고, 같이 간 멤버들이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한 사람들이었고, 영어 가이드북이면 그대로 현지인에게 보여주기도 좋을 것 같았다. 그 후 여행을 떠날때마다 론리플래닛을 사모았고, 덕분에 방문했던 곳을 다룬 여러권의 론리플래닛을 가지게 되었다.

론리플래닛은 굉장한 맛집을 소개하거나 핫 플레이스를 다루지는 못한다. 인쇄본이다보니 업데이트 주기가 길고, 종종 철지난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최신 정보는 잘 반영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정보의 신뢰성과 커버리지는 탑 레벨이겠다. 가보지도 않고 ‘카더라’로 서술하는 경우는 없고, 정치, 경제, 문화적인 면까지 깊이 있게 다루니 여행지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서가에 주욱 꽂아놓아도 이쁘다.

이런 론리플래닛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시리즈처럼 사모으다보니 엉뚱한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갔을 때다. 순양함 오로라호에 가려고 지도를 보고는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역에서 걷기로 했는데, 걷다 지쳐서 택시를 타야하나 싶을 정도로 먼 거리였다. 바로 옆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지도를 보니 이건 왠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론리플래닛은 어느 한 지역을 적당히 나눠서 수록하고 설명하는데, 지역별로 지도의 축적이 다르다. (러시아처럼 큰 나라와 발리 같은 작은 지역이 같을 수 없을테니...) 그걸 생각하지 못하고 지도를 대충 눈대중으로 보고 출발했다가 그 사단이 난거였다.

이런 얘기를 갑자기 꺼낸 이유는, 양곤이 생각보다 훨씬 크고, 대충 걸어다니기에는 거리가 멀고, 보도가 잘 만들어져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양곤 첫날의 후반부에는 정말 많이 헤매고 다녔다.

 

 

보더따웅을 나와 그랩을 이용해 택시를 불렀다. 다들 미얀마에서는그랩이진리라고 하는데다, 한국에서 만난 슈웨씨도 그랩을 쓰라고 했었다. 난생 처음 써보는 터라 살짝 긴장도 했는데, 아주 직관적이라서 어려움은 없었다. 카카오택시처럼 가고자 하는 곳과 현재 위치를 지정하면 되는데, 차이점이라면 요금이 확정된다는 정도였다. 어디까지 얼마. 내릴때 약속한 금액만 지불하면 됐다. 보통은 거스름돈도 잘 챙겨줬다. 문제라면 예약 후 확인전화가 오는데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기사님들이 제법 있었다. 그럴때는 주변 사진을 찍거나 지도를 캡쳐해서 저는여기있어요, 보내줘야 했다. 어쨌든 나의 첫 그랩 택시 기사님과 침묵의 시간을 공유하며 응아짯지에 도착했다. 스콜이 내리기 시작했다. 요금을 지불하고 사원으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뛰어들었다.

 

 

 

 

 

 

 

 

 

 

 

 

 

 

 

 

 

 

 

응아짯지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닌 듯 했다.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높지 않은 계단을 걸어올라가니 사람들이 느긋하게 앉아있었다. 높이 14m의 좌불상은 압도적이었지만, 어딘지 위트가 느껴지는 표정때문인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경내는 고요하고 빗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에 잠긴 듯 무심히 부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곁에 잠시 앉아있다 고개를 숙이고 사원을 떠났다.

다음 목적지는 깐도지호수였다. 호수에 조성된 두개의 공원을 보고 슈웨다곤으로 가는 계획이었다. 지도를 보니 금방 갈 수 있겠다 싶었다.

갓길을 따라 길을 걸어내려갔다. 

 

 

지름길이라고 생각되어 들어간 골목에서 갑작스레 마을을 만났다. 오전에 봤던 철길의 빈민가보다는 덜했지만 무척 쇠락한 공간이었다. 사람들의 삶이 여과없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고 머리를 감는 사람들, 속옷차림의 아주머니들과 아이들도 보였다.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천천히 길을 따라 걸었다.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눴다.

 

 

 

 

 

왜 이렇게 멀지, 슬슬 지쳐갈때 쯤 호수로 연결되는 길이 나타났다. 길을 따라 걸어내려가자 갑자기 깐도지호수와 보족아웅산공원이 나타났다.

 

 

도착하는데 한시간 이상이 소요됐다. 결코 금방이 아니었다. 아침부터 걸어다닌터라 꽤 지친 상태였지만, 평온한 호수의 풍경에 기운을 찾을 수 있었다.

 

 

 

 

 

표지판을 따라 전망대를 찾아갔다. 2층부터 4층까지는 거대한 노래방들이 성업중이었고, 꼭대기의 전망대에는 학생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케이팝 스타들의 이니셜 포즈를 따라하는 모습도 보였다.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난간으로 다가가니 시원한 바람과 함께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 슈웨다곤이 보였다. 울창한 숲 뒤로 솟아난 모습이 신비로움을 느끼게 했다. 전망대를 내려와 깐도지공원 방향으로 향했다.

 

 

지도상으로는 붙어있었지만, 두 공원 사이를 연결하는 길은 없었다(못찾은 거라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 이쪽이지 않을까 따라갔던 길은 세번이나 막혀있었고, 같은 길을 두번이나 되돌아와야했다. 결국 포기하고 처음 도착했던 입구로 돌아가 차도를 따라 깐도지공원으로 향했다. 바로 옆이라고 생각한 곳까지 가는데 한시간 반이 걸렸다. 당연히, 깐도지공원에 도착했을때는 파김치가 되어있었다. 옆에서 헐떡이던 말던 공원 입구의 고양이들은 느긋하게 그루밍을 하고 있었다.

 

 

 

 

 

풀숲에서 닭가족이 걸어나왔다. 암탉이 병아리들과 함께 먹이를 찾더니 잠시 후 수탉도 나타났다. 넷이서 먹이를 찾으며 주변을 돌아다니는데, 딱히 사람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공원에 풀어놓은 닭과 병아리라니, 신기하면서도 어쩐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한쪽에서는 고양이들이 그루밍을, 그 옆에서는 닭과 병아리들이 먹이를 찾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웃음이 나왔다. 참 평화롭구나.

 

 

양곤 뿐 아니라, 나중에 들른 바간과 만달레이에도 곳곳에서 물항아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얼마나 자주 비우고 채워지는지 알 수 없었지만, 들여다보면 제법 깨끗한 물이 찰랑이고 있었다. 한번 마셔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모험인 것 같아 그만두었다. 잠시 쉬니 기운이 조금 돌아왔다. 호수의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깐도지호수에 대한 글들에는 낡은 목조다리를 따라 호수 가운데로 갈 수 있다고 했었다. 보족아웅산공원도 깐도지공원도 다리가 모조리 보수중이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눈앞에서 입맛을 다시다 돌아섰다.

 

 

 

 

 

 

 

 

 

 

 

 

 

 

본래는 슈웨다곤까지 갈 계획이었지만, 깐도지호수의 끝에서 완전히 탈진하고 말았다. 호수는 예상보다 훨씬 컸고, 길을 헤매도 너무 헤맸다. 이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에 택시를 불러 숙소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