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er::97d67d5a-909b-457f-abbe-5313f8215e81

여행

Starless
나의 파고다를 찾아서

Starless 2018-12-18 17:07:25 111

이바이크를 타고 2번국도에 들어섰다. 이라와디강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는 몇개의 마을을 거치며 냥우로 향해있었다. 도로사정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군데군데 패인 자국이 있었고, 대충 보수된 탓에 울퉁불퉁한데다 마른 모래까지 덮여있어 미끄러웠다. 가드레일이 없다보니 방심하다가는 풀숲으로 돌진하기 일쑤였다. 다행이라면 이바이크의 최고속도가 40km/h 인 탓에 어차피 밟지 못한다는 정도였다. 빠르게 추월해가는 차들에 양보하며 달리다보니 왼편 언덕위로 폐허가 나타났다.

 

 

룸비니에서 봤던 절터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벽돌로 지어진 터에 작은 파고다들이 보였다. 한쪽에 앉아있던 젊은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신발은 벗어야 합니다. 이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풍경이 아름다울거에요.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무너진 벽 위로 걸어올라갔다. 멀리 이라와디강과 숲, 흩어진 파고다들이 보였다. 사진으로 보던 바간의 풍경이었다. 드디어 왔구나. 잠시 기대앉자 강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아름다운 풍경이죠? 입구의 젊은 남자였다. 이 풍경이 보고 싶었어요. 바간은 처음인가요? 미얀마는 처음입니다. 환영합니다. 남자는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자리를 떴다. 바람을 조금 더 느끼다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입구에서 다시 만난 젊은 남자는 혹시 그림에 관심이 있냐고 물어왔다. 바간 사람들의 생계 중 하나라는 그림을 보여주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더 훌륭했다. 그림을 좋아하지만 지금은 사고 싶지 않군요. 조금 더 돌아다닐 생각이거든요. 남자는 더이상 권하지 않고 미소지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좋은 여행이길 바랍니다. 남자에게 손을 흔들고 이바이크로 향했다.

 

 

길을 따라 조금 달리자 마을이 나타났다. 상점과 숙소들, 음식점이 늘어선 제법 큰 마을이었다. 그 입구에 마누하사원이 있었다.

 

 

1057년 세워진 마누하사원은 따톤왕국 마누하왕에서 이름을 따왔다. 마누하왕은 바간왕국과의 전쟁 중 포로로 잡혀왔는데, 이 사원에 감금되어 지냈다. 사원에는 네 방향을 바라보는 세 개의 좌불과 거대한 와불 하나가 있는데 모두 크기에 비해 협소한 공간에 안치되어있다. 이는 갇혀 지내야했던 마누하왕의 참담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사원을 돌아다녀보니 안치된 부처의 얼굴도 제대로 보기 어려울만큼 공간이 좁았다. 와불을 뵈러 가는 통로는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였다. 사원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차분했다.

 

 

 

 

 

 

 

 

 

 

 

경내 한구석에 잠시 앉았다. 다시 바람이 불어왔다. 사원 앞에서 흥겹게 고무줄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슈웨산도파고다로 향했다.

 

 

 

 

 

바간에 온 또 하나의 이유는 일출 또는 일몰 시간에 보이는 탑들의 풍경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천 개의불탑' 위로 뜨는 해, 하늘 가득 떠있는 열기구의 풍경을 보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에 포함된다고 했다. 슈웨산도는 일몰의 명소로 이곳에서 바간의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슈웨산도로 이어지는 좁은 길을 따라 로카우샹사원, 이름모를 사원과 파고다들이 만들어내는 풍경 속으로 달렸다.

 

 

 

 

 

 

 

 

 

 

 

뉴스를 통해 바간의 파고다에는 더이상 오를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2016년의 대규모 지진 후 안전과 유적보호의 이유로 출입이 금지된 것이다. 대표적인 슈웨산도 역시 그렇다고 했는데, 실제로 와보니 파고다 위로 올라가는 길은 막혀있었다. 다시 말하면 파고다 위에서 보는 일몰의 풍경은 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실망한 표정으로 서있으니 동네 꼬맹이들이 서툰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제가 아는 파고다가 있는데 가실래요? 거기는 올라갈 수 있어요. 누군가 해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의 사원에 데려가준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잠이 들었는데, 눈떠보니 아무도 내가 어디있는지 모르더라'는 얘기가 떠올랐다. 괜찮아. 난 올라가고 싶지 않아. 응수해주고 슈웨산도 주변을 거닐었다.

 

 

 

 

 

 

 

 

파고다를 한바퀴 돌고 와불을 모신 곳으로 들어갔다. 마누하 만큼은 아니었지만 역시 거대한 와불이었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나오자 파고다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염소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가가면 슬금슬금 피하는게 재밌어 졸졸 따라다니다 바이크로 돌아갔다. 그나저나 일몰을 어떻게 본다지. 구글맵에서 본 난민타워로 가야하나, 고민스러워졌다.

 

 

 

 

 

 

 

 

2번국도로 돌아나오자 맞은편에 거대한 파고다가 보였다. 호기심이 일어 가보기로 했다. 파고다 방향으로 한참을 달리는데 점점 길이 좁아지더니 결국에는 샛길로 들어섰다. 파고다 앞에까지 가보니, 이런, 파고다의 뒷편인데 길을 가로막은 철조망의 일부가 뜯겨져있었다. 설마 꼬맹이들이 말한 '올라갈 수 있는 파고다'가 여기를 말하는 건가, 궁금해져서 철조망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으로는 별다른 장애물은 없었다. 파고다의 상부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서 보니 문이 열려있었다. 아, 이런 곳으로 올라간다는 얘기였구나.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딱히 자랑스럽게 해도 되는 일은 아니겠네,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파고다의 정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파고다에서 본 풍경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잠시 취해있다 철조망을 통해 돌아나왔다. 만약 이렇다면 꼬맹이들이 가리킨 방향에도 올라갈 수 있는 파고다가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이바이크를 돌려 담마얀지사원쪽으로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