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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백창원
노벰버 레인

백창원 2018-11-24 16:33:27 105

 

 

11월 24일, 꽤나 추워져버린 날씨에 옷길을 여미게 되는 토요일 아침이다. 

평생학습원 드론수업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추풍령 고개서 영천사이 지방도에도 제법 눈이 쌓였으니 눈길운전 조심하라는 교통방송 아나운서의 나긋나긋한 경고를 접했다.

 

첫눈이구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설경사진이 줄을 잇는다.

대설주의보임에도 #첫눈 #설레임 #축복 같은 해시태그가 유통되는 서울은 기대치 않은 첫 눈에 온통 들뜬 모양새다.

 

그러고보니 올해 11월은 유난히 비에 인색했다.

실제로 기상청 관측자료를 봤더니 17.3mm를 기록한 8일 하루를 제외하고는 강수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 덕분에 비오는 11월이면 원튼 원치 않든 듣게되는 그 노래가 들리지 않았던 게로구나. 

 

LEICA M6, SUMMICRON-M 35mm f2, KODAK 400TX

 

 

카랑카랑한 액슬로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 만큼이나 2018년은 개인적으로 흔치 않은 일을 겪은 해였다. 

 

평생 안경을 써온 나지만 시력에 관해서는 별불편 없이 살아왔는데,

작년 6월 왼쪽 눈에만 원인 모를 백내장이 급작스레 찾아왔다.

 

우윳빛막이 한꺼풀 낀 듯 눈 앞이 온통 희뿌연 것이 백내장을 앓기엔 제법 이른 나이인 나로서는 충격적이고 무서운 경험이었다.

 

상실보다는 성취에 익숙한 40대 초반,

결국 비가역적으로 뿌옇게 변해버린 수정체를 인공의 것으로 대체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 1년 간 하나로 족했던 안경은 세 개로 늘었고 인공누액을 달고 살게 되었으며 사진 찍는 주시안은 왼눈에서 오른눈으로 옮아갔다.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기에 마음이란 변할 수도 있다는 걸 우리 둘 다 알고 있어요

         ‘Cause nothing lasts forever and we both know hearts can change

 

          차가운 11월의 빗줄기 속에서 촛불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And it’s hard to hold a candle in the cold November rain

 

 

곰곰히 생각해보니 잃은 것이 하나둘이 아님을 깨닫는다.

결혼 10년차 식어가는 호르몬은 소외의 껍데기를 점차 두껍게 굳혀가고 젊고 싱싱함에 대해 도태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생기넘치는 녹음을 지나 번식의 의무를 다한 늦가을 11월의 비는 잔인하리만큼 차가울 따름이다. 

 

 

          당신에게 시간이 필요한가요?

          Do you need some time.. on your own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한가요?

          Do you need some time.. all alone

 

          누구나 자신만의 시간을 필요로 하죠.

          Everybody needs some time.. on their own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아시나요!

         Don’t you know you need some time.. all alone!

 

 

 

 

ROLLEI35SE, KODAK PORTRA 400

 

 

 

가슴 속 외로움이 곪아터져 부르는 중년의 노래는 차라리 절규다. 

 

오직 사진에게 헌정된 이토록 이지적인 공예품은 탄탄한 직선을 기반하여 절제된 곡선이 아찔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하릴없이 목에 걸린 라이카의 니켈크롬 바디를 매만지기 시작한 한 것도 이 무렵이었나보다.

 

24/7 항상 어딘가에 속해있지만 마음의 닻을 내릴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기에 속절없이 유형(有形)으로 집착하는 나를 본다.

즉각적이고 편리한 JPEG보다 더디고 귀찮은 필름인 이유일 것이다.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죠. 

         ‘Cause nothing lasts forever 

 

         차가운 11월의 비조차도..

         Even cold November rain..

 

 

어김없이 계절은 바뀌고 바람은 이리로 불어왔다 저리로 불어가는 법. 

 

앞으로는 또 어떠한 상실과 마주할 것이며 그에 저항하기 위한 애착의 대상은 무엇일지..

노벰버 레인을 듣지 못한 특이한 11월에 대답이 궁금하지 않은 질문만이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