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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Starless
다시, 양곤

Starless 2019-04-12 15:07:57 353

만달레이를 출발한 심야버스는 6시 쯤 양곤에 도착했다. 

(당연히) 버스터미널로 갈 줄 알았는데, 버스는 간선도로에 섰다. 내리고보니 길에 버려지는 느낌이었는데, 대학시절 데모하다가 전경 버스를 타고 자유로까지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꺼번에 버리면 또 작당을 할테니 달리다가 한 명 버리고, 다시 달리다가 한 명 버리는 바람에 결국 각자 히치하이킹을 해서 집으로 돌아갔었다. 그러고보니 여자 후배 하나는 어떻게 집에 가냐고 소리를 꽥꽥 질러 전경 중대장으로부터 택시비를 뜯어냈었다. 그 녀석은 잘 살고 있을거야, 혼자 키득거리며 그랩을 켰다.

다들 바빠. 메시지가 올라왔다. 응? 껐다 켜봤지만, 다들 바빠. 다시 메시지가 올라왔다. 이거 출근시간이라고 이러는건가, 이걸 어쩌나, 그랩만이 살 길인 줄 알았는데, 난감해하고 있는데 한 남자가 셰어 택시? 말을 걸어왔다. 다운타운까지 얼마야? 칠천. 아이고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수퍼카는 어디에 있나요? 얼른 타고 보니 우리식으로 따지면 합승택시였다. 나 외에 승객 둘을 더 태우고서야 택시는 출발했다. 뭔가 익숙한 포맷이라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6일 만에 양곤에 돌아오니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낯익은 거리를 지나 숙소에 도착해보니 첫날 묵었던 숙소의 바로 옆 블럭이었다. 택시기사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호텔로 들어가니 어쩐지 얼리 체크인을 해줬다. 헐. 감사합니다. 이 시간에 체크인이라니, 대체 미얀마에는 고마운 선생님들이 왜 이리 많으신가요? 리셉션의 스탭선생님께 인사드리고 방으로 향했다. 가격이 두배인만큼 새 숙소는 더 크고 쾌적했다. 튼튼한 시건장치도 제공됐다. 샤워를 하고 에어컨을 켜니 잠이 솔솔 왔다. 아, 이대로 뻗어버릴까 하다가 민중과의 약속을 기억해냈다. 민중은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미얀마인 친구다. 한국에 관심이 많아 한국어도 약간 하고 멋대로 "형"이라고 부르며 말을 걸곤 한다. 미얀마에 왔으니 꼭 만나야 할 사람이었다.

약속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으니 사원 두 곳은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9시 쯤 숙소를 나와 부처의 치아를 모셨다는 슈웨쪼미얏 파고다로 향했다.

 

 

어디서 왔냐는 택시기사의 질문에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기사는 차창 앞의 버스를 가리키며 자고로 버스는 현대라고 엄지를 세웠다. 그러고보니 미얀마에는 유독 현대 버스가 많았다. 대부분은 한국에서 운행하다가 별다른 추가 액션 없이 수출된 것들이었다. 한국에서 붙여놓은 각종 광고와 안내판이 그대로 붙어있었다. 택시기사에게 저기 써있는게 무슨 뜻인지 아냐고 묻자, 어깨를 으쓱하며 잘 모르겠지만 글씨가 예쁘다는 답이 돌아왔다. 예쁜 글씨로 써있는 비뇨기과라... 얘기를 할까 말까 하다가, 아 이건 아껴뒀다 민중에게 얘기해주기로 결심했다. (나중에 민중에게 얘기해주니 막 웃다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비뇨기를 뭐라고 하면 좋을지 떠오르지도 않고 장난기도 발동해서 섹슈얼 오갠이라고 했더니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

 

 

슈웨쪼미얏 파고다는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깨끗하게 정돈된 경내에는 화려한 사원이 서 있었다. 역시 네 방향이군, 경내를 한바퀴 돌고 사원안으로 들어갔다.

 

 

 

 

 

 

 

 

 

 

 

 

 

 

 

 

 

사원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부처의 치아를 바라봤다. 이래서야 없던 신심이라도 생기겠군, 엄청나게 화려하게 장식된 치아를 보다가 사람들과 함께 예를 올렸다. 역시 종교를 가져야 하는 걸까.

꺼바아예 파고다로 가볼까, 한참을 앉아있다 사원 밖으로 나섰다.

 

 

 

 

 

 

 

 

 

 

 

날이 좀 덥기는 했지만 걸어도 될 거리였다. 두리번거리며 길을 따라가다 얘구 역으로 향하는 큰 골목을 발견했다. 들어가볼까, 사람들로 북적이는 골목으로 이끌리듯 걸음을 옮겼다.

 

 

 

 

 

 

 

 

 

 

 

 

 

 

 

 

 

 

 

 

 

 

 

 

 

 

 

 

 

 

 

 

 

 

 

 

 

 

 

 

 

 

 

 

 

 

 

결국 한시간 넘게 골목 안을 헤맸다. 사람들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풍경들,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건물들은 어마어마한 멜랑콜리를 풍기고 있었다. 이런 곳을 지나쳤으면 두고두고 후회했겠다 싶었다.

민중과의 약속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택시를 타러 갔다. 

 

 

민중과는 양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한식당 서라벌에서 만났다. 개인적으로는 외국에서 한식당을 가지 않는 편인데, 보통 비싸고 맛없는데다 굳이 외국에서 한식을 먹는게 뭔가 억울해서 그렇다. 그래도 한국을 좋아하는 민중에게 한식을 꼭 소개해주고 싶었다. 다행히 서라벌은 음식을 잘하는 편이었다. 찬이 정갈하고 제법 한국식 맛을 내는 곳이었다. 문제라면, 민중이 거의 먹지를 않아 음식 대부분을 남긴 것이겠다. 미얀마인들이 우리보다 훨씬 적게 먹는다는 걸 잊고 마구 시킨 탓이다. 어쨌든 영어 반, 한국어 반을 섞어가며 수다를 떨다가 식당을 나섰다.

 

 

딱히 계획을 세운 건 아니라서 민중과 오후를 보내기로 했다. 함께 민중의 차로 갔는데 기아 프라이드였다. 나한테 차가 있냐며, 역시 한국차냐고 묻길래 내 차는 토요타야, 대답했더니 의아하다는 표정이 돌아왔다. 기아나 현대가 좋던데 왜 토요타를? 이라는 표정이었다. 생각해보니 미얀마에는 정말 많은 토요타가 돌아다니는데 대부분 30년 쯤 된 구형들이었다. 그래서 토요타는 구형, 기아나 현대는 신형이라는 공식이 있는 것 같았다. 뭐라고 설명하기 애매해서 그냥 웃고 말았는데 기분이 묘했다.

어쨌든 함께 차를 타고 슈웨다곤으로 향했다.

 

 

 

 

 

 

 

 

 

 

 

 

 

 

 

 

 

 

 

 

 

 

 

 

 

 

민중은 슈웨다곤의 뒷길들과 박물관으로 안내했다. 이러저러한 설명을 들으니 아무래도 조금 더 이해도가 깊어지는 것 같았다. 오후의 슈웨다곤을 한바퀴 돌고 함께 쇼핑몰로 향했다.

 

 

쇼핑몰은 이제 막 지어졌는지 그 크기에 비해 한산해보였다. 식당가에는 아딸이나 공차같은 한국 브랜드들이 제법 많이 입주해있고, 세련된 복장의 미얀마 젊은이들을 볼 수 있었다. 생긴게 비슷한데다 복장도 비슷하니 영락없는 한국 젊은이들로 보였다. 꽤나 한류바람이 부는건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배가 고프지 않아 카야토스트를 파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말레이식 커피를 주문하고 병원에 계신다는 민중의 아버님, 미얀마 사람들의 기부 풍습, 민중이 하고 싶다는 약국 사업, 한국 기업들의 미얀마 진출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민중에게 한국에 꼭 오라고, 영하의 날씨를 느껴봐야 한다, 눈도 봐야하지 않겠나, 한국에 오면 내가 태우고 다니겠다고 약속했다.

민중이 태워준 덕분에 숙소까지도 편하게 돌아왔다. 숙소 앞에서 민중은 올해는 힘들겠지만 내년 혹은 내후년 쯤 한국에 오겠다고 말했다. 한국에 오면 어디를 가면 좋을까 행복한 고민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늦은 밤, 민중과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