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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Starless
뜻밖의 여정

Starless 2018-11-24 14:20:11 83

슈웨다곤을 떠나 호텔로 돌아왔다. 어제밤 사둔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짐을 챙겨 1층으로 내려갔다.

체크아웃 하려고. 어디로 가? 바간행 야간버스를 탈거야. 바간은 멋진 곳이지. 짐을 맡겨도 될까? 물론이지, 몇시에 돌아올 생각이야? 여섯시 쯤. 이따봐.

직원에게 손을 흔들고 양곤순환열차를 타러 갔다. 양곤순환열차는 서울지하철 2호선처럼 양곤을 빙글빙글 도는 열차인데, 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요금은 단돈 100원. 그 안의 풍경이 궁금했다.  

식민시절 지어진 양곤역은 규모가 제법 컸다. 미얀마 전통가옥 형태의 지붕을 현대적인 건물이 떠받치고 있었다. 열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구경은 나중에, 곧장 역사로 들어갔다. 양곤순환열차는 7번 플랫폼에서 표를 살 수 있다고 했다. 역사의 창구를 지나쳐 일단 대합실로 들어갔다. 대합실은 떠나는 사람들과 돌아오는 사람들,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차있었다.

 

 

 

 

 

두리번 7번 플랫폼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머리속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다시 역사로 나가 제복을 입은 직원에게 물었다. 7번 플랫폼이 어디죠? 저쪽으로 건너가세요. 그럼 그렇지, 대합실에서 기다려서 될 게 아니었다. 직원이 가르쳐준 길을 따라 육교로 올라가니 표지판이 보였다. 저기군.

 

 

 

 

 

 

 

 

무사히 도착해서 창구를 찾았다. 순환열차를 타려고 하는데요. 여기 있습니다. 열차가 언제 오나요? 곧 출발합니다. 표를 받고 플랫폼을 보니 멀리 전철이 한 대 보였다. 우와, JR2)이네, 저걸 기차로 쓰는구나, 신기해하며 다가가는 순간 열차가 출발했다. 한 남자가 달려가 열차에 매달렸다. 멋지네.

내 열차는 언제 오는 걸까. 아니 어디에 있는 걸까. 다시 두리번거렸지만 아직 도착 전인 것 같았다. 구경이나 해야지, 카메라를 들고 플랫폼을 돌아다녔다.

 

 

 

 

 

 

 

 

열차가 선로에 서면 사람들이 뛰어내려 플랫폼으로 건너왔다. 굳이 플랫폼에 세우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위험할텐데.
 

 

 

 

 

오래지 않아 낡은 열차 한대가 들어왔다. 7번 플랫폼, 낡은 열차 - 예상했던 양곤순환열차의 모습이었다. 조금 높은 발판을 밟고 올라서니 양쪽으로 좌석이 배치된 아늑한 공간이 나타났다. 좌석은 플라스틱처럼 보였지만 나무에 페인트칠을 한 것이었다. 문이 있어야 할 공간은 뚫려 있었다. 창문은 닫을 수 있는 것 같았지만 문과 마찬가지로 다 열려있었다. 열차는 긴 경적소리를 울리고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차는 조금 속도를 냈지만 그다지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도심을 벗어나자 산업시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낡은 풍경들이 스쳐지나갔다.

 

 

 

 

 

 

 

 

 

 

 

 

 

 

 

 

 

 

 

 

기차는 제법 많이 흔들렸다. 때때로 기우뚱, 제자리로 돌아오는데까지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신발을 벗고 양반다리로 앉거나 비스듬히 기대거나 아예 누워서 가고 있었다. 두 남자가 자리에서, 그리고 문앞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기차 안으로 담배 연기가 느릿느릿 돌아다녔다.

세 번째 역에서 수박을 파는 행상아주머니가 열차에 올랐다. 300원. 아주머니는 수박 한조각을 네모나게 잘라 긴 꼬지와 함께 비닐봉지에 담아주셨다. 사람들이 수박을 먹기 시작했다. 어느새 열차 안은 수박냄새로 가득했다. 나른하고 평화로운 여름날이었다. 규칙적으로 덜컹이는 기차의 리듬에 맞춰 차창밖을 보고 있으니 슬그머니 눈이 감겼다. 다리를 길게 뻗고 자리에 누웠다.

 

 

 

 

 

 

 

 

 

 

 

 

 

 

 

 

 

잠깐 잠든 것 같은데 한시간이나 지나있었다. 객차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다시 머리속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구글맵을 켜보니 양곤 동남쪽의 어느 곳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대체 왜 여기에? 가방을 챙겨 열차에서 뛰어내렸다(객차간 연결통로가 없어서 내렸다가 다음 칸에 타야하는 구조였다.) 뒷쪽 객차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신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실례. 네들 중 누가 영어 하니? 여학생들이 일제히 남학생 하나를 가리켰다. 이 열차 양곤 가니? 가는데요. 남학생이 대답했다. 휴우, 다행이다. 돌아가기는 하는구나. 여기서 얼마나 걸리니? 한시간요. 여학생 하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다른 학생들이 일제히 아냐, 더 걸려, 진짜? 토론이 시작됐다. 두시간요. 다른 여학생이 대답했다. 합의에 도달한 것 같았다. 하하, 식은땀이 났다. 애초에 3시간 정도 타려던 계획은 어느새 4시간 반으로 늘어나있었다. 이 열차가 순환열차 맞니? 아뇨, 교외열차인데요. 헐. 열차를 잘못 탄 거였다. 어쩐지 순환선이 자꾸 스위치백을 하더라. 어쩐지 한방향으로 가더라. 시간을 계산해보니, 다행히 야간버스는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아, 한숨을 쉬고 학생들에게 인사를 했다. 고마워. 덕분에 살았다. 별 말씀을요. 손을 흔들고 학생들의 맞은편에 자리잡고 앉았다. 내 표정을 살피는 것 같아 억지로 웃음을 지으니 그제서야 다시 자기들끼리 얘기에 빠져들었다.

 

 

어쨌든 열대의 풍경은 평화로웠다. 순환열차는 타지 못했지만 교외선을 탄 덕에 열대의 농촌 풍경을 보게 된 거였다. 이제와 조바심을 내봐야 소용 없었다. 풍경에 집중하기로 했다.

 

 

 

 

 

 

 

 

 

 

 

 

 

 

 

 

 

 

 

 

양곤 변두리에 도착했을때 스콜이 내리기 시작했다. 창문이 열려있으니 비가 그대로 열차 안에 들이쳤다. 비가 왼쪽에서 들이치면, 사람들은 오른쪽 좌석으로 옮겨 앉았다. 다시 오른쪽으로 비가 들이치면 사람들은 왼쪽으로 옮겨 앉았다. 비를 피하기 좋은 문 옆자리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났다. 내가 낄낄 웃자, 눈이 마주친 아이가 같이 웃었다. 폭우속을 덜컹거리며 열차는 양곤역으로 향했다.

 

 

 

 

 

 

 

 

 

 

 

양곤역에 도착했을 때 비는 그쳐있었다. 예정보다 한시간 반 늦은 시간, 오늘도 사지 못한 카메라 스트랩은 완전히 물건너갔다. 그랩으로 택시를 불러 숙소로 향했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고마운 직원에게 팁을 주는 것도 잊고 서둘러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조금 빨리 가주실래요? 택시기사님의 터프한 운전 덕분에 버스 출발 30분 전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말이 터미널이지 벌판에 띄엄띄엄 건물이 서있고, 건물별로 버스회사 사무실 앞에서 승차하는 방식이었다. 불빛도 거의 없었다. 터미널이 아니고 어느 버스회사로 가달라고 해야한다는 얘기가 이거였구나, 자칫하면 버스를 못탔겠다 싶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티켓카운터(로 보이는 곳의) 직원에게 바우처를 내밀었다. 네 버스는 한시간 반 뒤 거네? 저기 대합실에서 기다리렴. 헐. 이번에는 버스 시간을 착각한 것이었다. 오늘 참 대단하네, 허탈한 웃음이 났다.

 

 

 

 

 

 

 

 

 

 

 

잠시 터미널을 구경하고 바간행 버스에 올랐다. 당분간 안녕. 멀어지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잠을 청했다.

 

 

각주 2) Japan Rail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