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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Starless
로드 투 만달레이

Starless 2019-01-31 14:04:04 151

 

바간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을 먹고 양치질을 하는데 입안에서 피가 한 덩어리 나왔다. 헐. 나 어디 아픈가? 거울을 들여다보니 잇몸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호텔에서 준 억센 칫솔로 생각없이 문지르다보니 강제 잇몸치료가 된 셈이었다. 우와 위험한 칫솔이네. 덕분에 커피도 못마시고 택시를 불렀다.

터미널로 출발했다. 어느새 익숙해진 동네 풍경을 눈에 넣으며 작별을 고했다. 

 

 

 

 

 

 

 

 

 

 

 

예정보다 한 시간 빨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좀 돌아보고 싶어서 서두른건데 정작 터미널에는 볼 것도 할 것도 없었다. 티켓오피스에 바우처를 들고 갔더니 눈으로 스윽 보고는 기다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 심심하단 말야. 뭔가 얘기라도 하려고 하니 등을 돌려 자기들끼리의 대화로 돌아갔다. 하릴없이 버스 사이를 돌아다니고 좌석으로 개조된 트럭 짐칸을 구경하다 2인승 좌석을 부착한 자전거도 봤다. 터미널 출구에는 요금소와 함께 사람이 손으로 올리고 내리는 개폐기가 있었다. 줄을 당겨 바를 올리고 내리는 모습이 제법 흥미로웠다. 내가 한참을 구경하자 줄을 잡고 있던 남자는 게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터미널의 반대편에서는 '적정 요금표'를 발견했다. 뉴바간까지 8천 - 우와, 첫날 무려 2천원이나 바가지를 쓴 거였다. 아이 억울해. 서러운 마음에 어디 하소연할 곳은 없나 두리번거리는데 왠 금발 젊은이가 반가운 얼굴로 뛰어왔다. 혹시 바간에 가니? 우리 택시셰어할래? 와, 너 나보다 영어 더 못하는구나. 어디서 왔어? 물어보려다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참기로 했다. 대신 난 벌써 삼일째고 이제 만달레이로 간단다. 행운을 빌어주지. 시크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실망한 표정의 젊은이를 놔두고 돌아섰지만 여전히 할 일이 없었다. 아, 돌아가서 바지 얘기라도 해줄까, 잠시 갈등하는데 티켓오피스의 직원이 손을 흔들었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미니버스가 시동을 걸고 있었다. 뭐야, 이걸 타고 가는거야? 양곤에서 올 때의 커다란 에어컨 버스를 기대했는데. 어쨌든 출발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버스에 오르고 보니, 버스에는 나와 양파 포대 뿐이었다. 헐. 내 여행 동반자가 양파인거야? 기사에게 농담을 건네니 썰렁한 표정이 돌아왔다. 나 심심하단말야. 그나저나 이렇게 널널하게 가다니 운이 좋네. 다리 뻗고 편하게 가볼까.

 

 

한참을 달리는데 아무래도 방향이 이상했다. 아침에 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 같았다. 어라, 왜 이쪽으로? 버스는 내 호텔에서 걸어 10분도 안 될 거리의 정류소에 도착했다. 헐. 난 아침부터 어디를 간거지. 그리고는 꾸역꾸역 사람을 태우기 시작했다. (내 친구 양파는 여기서 내렸다). 버스는 순식간에 사람과 짐으로 가득찼다. 순서는 이랬다. 일단 모든 좌석에 사람을 태운다. 머리위 선반과 좌석 밑에 짐을 밀어넣는다. 그래도 안들어가는 캐리어를 통로에 줄지어 세운다. 통로에서 짐을 치우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내릴 수 없게 만든다. 와, 이게 되는구나. 놀라웠다.

 

 

사람과 짐을 그렇게 싣고도 버스는 출발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뒷자리의 중국인들이 차장에게 몇 시에 출발하냐고 물었다.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물론 중국인들의 발음이 대단하기는 했다.) 다시 물었다. 또 못 알아들었다. 답답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몇 시에 출발하는데? 아아, 여덟시 반에 출발해. 야, 지금 여덟시 삼심칠분이야. 어, 그러네? 와하하. 천연덕스럽게 웃는걸 보더니 버스안 승객들도 따라 웃었다. 아, 근데 진짜 언제 출발하는데? 아마 곧? 승객을 모두 확인 한 후에도 버스는 한참만에야 출발했다.

 

 

 


 


 

 

 

 

 

 

 

 

 

 

 

 

만달레이까지의 여정 중 두 번 휴게소에 들렀다. 첫번째 휴게소에서는 행상 아주머니들이 버스 차창으로 다가와 음식을 팔았다. 네 개들이 삶은 메추리알을 두 봉지 사고 돈을 드리니 잔돈이 없다며 한 봉지가 더 넘어왔다. 메추리알 열두 개를 가진 부자가 됐다. 차창에 늘어놓으니 뿌듯했다.
 

 

 

 

 

 

 

 

 

 

 

 

 

 

 

 

 

 

 

 

 

 

 

두번째 휴게소는 커다란 식당도 있는 곳이라 버스에서 내렸다. 잠시 구경을 하다 행상 아가씨에게서 귤과 메론무침을 샀다. 사진 한 장 찍자고 하니 어찌나 부끄러워하는지 카메라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폴라로이드를 꺼냈다. 한 장 찍어 건네주니 폴라로이드를 처음 보는지 이게 뭐냐는 표정이었다. 흔들라고 가르쳐주니 부채질 하듯 하는데, 점차 상이 맺히는 걸 보고는 장사고 뭐고 내팽개치고 가족들에게 자랑하러 가버렸다. 인사도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버스에 올랐다.
 

 

2번 국도를 한참 달리던 버스는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도로 양옆으로 펼쳐진 평원을 보고 있는데 버스가 속도를 줄였다.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뭐지, 문제라도 발생한 걸까 불안하게 보는데 버스가 완전히 멈추더니 문이 열리고 차장이 문밖에 대고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차창 밖으로 보니 스님 한분이 서 있었다. 차장은 스님에게 물병을 세 개 건네고는 합장을 했다. 공양이구나. 버스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멀리 천년 고도 만달레이가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