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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Starless
마지막 오후

Starless 2019-05-27 18:01:38 122

항상 그런 식이었다. 익숙해질 즈음이면 여행이 끝나버렸다.

미얀마에서의 시간들도 그런 식으로 끝나가고 있었다. 풍경과 사람들의 표정, 공기에 익숙해지자마자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다.

 

 

두어번 더 탈까 고민하게 만든 양곤순환열차를 애써 보내버리고, 조금은 쓸쓸한 기분으로 양곤역을 걸어나왔다. 거대한 역 앞 광장에 세워진 분수대를 잠시 보다가 비둘기들 사이를 뚫고 보족아웅산시장으로 향했다. 민중(sea kyo)은 꼭 시장에 가보라고 했었다.

 

 

 

 

 

 

 

 

보족아웅산시장 방향으로 걸어올라가면서도 양곤역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기차길 위로 놓인 다리를 지나며 또 한참 플랫폼을 바라봤다. 이 풍경도 무척 그리워지겠군, 머리를 흔들고 길을 건넜다.

 

 

 

 

 

 

 

 

역시 다이내믹한 미얀마여행이군, 보족아웅산시장은 휴무일이었다. 닫힌 출입구를 멍하니 보다가 일단 기운부터 좀 차리자 싶어졌다. 길 건너편의 쇼핑몰로 들어가 나름 세련된 카페에서 아이스티를 마셨다.

 

 

이제와 역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데,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옥불상을 보러 가기로 했다. 

 

 

사원 입구에 내려 두리번 점심거리를 찾았다. 몇 군데의 노점상이 있었지만, 파는 것이라곤 과일 뿐이었다. 인심 좋을 것 같은 아주머니께 다가가 파인애플을 샀다. 아주머니는 파인애플을 슥슥 잘라내더니 비닐봉지에 담고는 설탕과 고추가루를 뿌려주셨다. 고추가루라, 이걸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 입에 넣었는데, 그럼 그렇지, 미얀마 음식은 역시 우리 입맛에 잘 맞았다. 신맛과 단맛이 지나가고 뒷맛으로 아주 옅은 매콤함이 느껴졌다. 이거 좋네, 연신 우물거리다 아주머니께 엄지를 들어보였다.

 

 

 

 

 

 

 

 

 

 

 

 

 

 

옥불상은, 참 컸다.

너무나 큰 옥불상 앞에는 사람들이 저마다 예를 올리고 있었다. 다른 사원들에서도 그랬지만, 이곳에도 유독 단체 참배객들이 눈에 띄었다. 아이를 데려온 젊은 부부, 친구들끼리 온 젊은이들, 할머니들과 아주머니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자리를 잡고 다리를 쭈욱 폈다. 이런 평화로움도 당분간은 안녕이겠네, 다시 쓸쓸한 기분이 되었다.

 

 

 

 

 

 

 

 

사원을 벗어나 슈웨다곤으로 택시를 탔다. 남문으로 이어지는 교차로에서 내려, 오가다 눈에 넣어뒀던 이웃 사원으로 향했다. 마하 위자야 파고다. 슈웨다곤 인근에 있는 탓에 상대적으로 소박해보였지만, 규모가 제법 될 것 같은 사원이었다.

 

 

 

 

 

 

 

 

 

 

 

사원에는 관광객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현지인들이 조금은 느긋하게 참배를 올리고 있는데, 사원의 모습이나 꾸며놓은 것들도 무척 소박했다. 꽤 촌스러운 색으로 내부를 단장하고 귀에 거슬릴만큼 큰 경전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아마도 테이프를 틀어둔 것이겠지.

한쪽의 스님은 경을 외다말다했다. 어깨너머로 훔쳐보니 경을 외며 휴대폰으로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다. 아스트랄한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다른 사원들과는 분위기가 다르네.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사원의 기본 구조는 비슷했다. 네 방향으로 열린 통로를 따라 경내를 한 바퀴 돌고 처음 들어온 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복전함 앞에는 고양이 한마리가 졸고 있었다. 털에 윤기가 도는 것이 귀여워 쓰다듬어주니, 왠걸 녀석은 무릎으로 올라와 꾹꾹이를 시작했다. 아직 아가구나, 턱을 긁어주니 아예 품 안에 자리를 잡고 잠이 들어버렸다. 미얀마에서는 사람이고 동물이고 경계라는 걸 하지 않는군,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지만 30분 넘게 꼼짝도 하지 못하다보니 다리가 저려왔다. 내가 자꾸 움찔움찔하자 녀석은 스윽 쳐다보더니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잘 지내렴. 한국의 고양이들도 너처럼 좋은 대접을 받으면 좋겠구나.

 

 

사원밖으로 나오다보니 새를 잡아 둔 장이 보였다. 잡아먹는 것은 아닐텐데, 호기심이 생겨 보고 있으니 사람들이 돈을 내고 새를 한 마리씩 사더니 하늘로 날려보냈다. 날려보내기 전 뭔가 기원을 하는 것 같았다. 방생인가, 어릴적 할머니를 따라가 한강에 잉어를 풀어주던 일이 떠올랐다. 새들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손을 흔들고 사원을 떠났다.
 

마지막은 결국 슈웨다곤이었다. 해뜰녘 찾아가 한나절 앉아있었고, 민중과 들렀을 때는 오후를 보냈다. 이로써 세번째이자 마지막 방문인데, 미얀마의 마지막으로는 역시 슈웨다곤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처를 찾아 다섯 번 물을 붓고, 다섯 번 종을 울리고, 경내를 다섯 번 돌고 나서야 떠날 마음이 들었다. 동문 입구에서 마지막으로 슈웨다곤을 한번 바라보고 호텔로 향했다.

 

 

안녕, 짐을 맡아준 스탭에게 인사를 하고 호텔을 떠났다.

 

 

호텔 앞 바나나전문점 아주머니께는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했다. 오가며 신기한 표정으로 기웃거리니 먹어보라며 바나나를 가리켰었다. 집으로 돌아간다고 손을 흔들자 서운한 표정을 지으셨다. 다시 오겠습니다, 건강하세요. 고개를 꾸벅 숙이고 택시에 올랐다.

 

 

미얀마를 떠났다. 미얀마 사람들에게도, 또 우리에게도 평화가 있기를, 인연이 이어져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랬다.

2018년의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