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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starless
데이투어

starless 2019-03-20 10:16:43 231

만달레이의 마지막 밤은 대단했다. 숙소에 돌아와 맥주를 따고 글을 끄적이는데, 어디선가 드릴 소리가 났다. 공사라도 하나? 이 밤에? 복도에 나가보니 맞은편 방의 투숙객들이 방문을 열고 뭔가를 가공하고 있었다. 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진짜로 가공하고 있었다. 이게 뭔 황당한 상황인가 싶어서 프론트에 연락했다. 와서 좀 말려봐라. 프론트가 다녀가고 잠시 조용한가 싶더니 이번에는 운동회를 하는 듯한 환호성이 들려왔다. 다시 복도에 나가보니 저쪽 복도 끝의 투숙객들과 이쪽 복도 끝의 투숙객들이 (그 사이에는 10여 개의 방이 있다) 서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하아… 다시 프론트에 전화했다.  또 프론트가 다녀가고 좀 잠잠한가 했더니 이번에는 운동회 소리와 드릴 소리가 함께 나기 시작했다. 다시 나가보니 저쪽 복도로 대동단결한 투숙객들이 방문을 열어놓고 뭔가를 가공하면서 버너로 뭔가를 끓이고 있었다. 담배연기는 덤이었다. 헐. 이쯤 되면 프론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조용히 프론트로 내려가서 나 방 바꿔줘. 쟤들 미친 것 같아. 웃으며 얘기했다. 프론트의 청년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두말 않고 층을 바꿔줬다. 짐을 모조리 싸서 두 층 아래로 옮긴 다음에야 잠들 수 있었다. 하아…

 

 

잠을 설친 덕에 늦잠을 잤다. 세수도 못하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다행히 어제의 투숙객들은 보이지 않았다. 잘 정돈된 식당에는 미얀마식 요리들이 놓여있었다. 오늘은 미얀마식으로만 먹어보자 싶어 볶음국수에 삶은채소, 수프를 담아 자리에 앉았는데, 와, 볶음국수가 정말 맛있었다. 그러고보니, 미얀마에 와서 처음 먹는 볶음국수였다. 이 맛있는걸 왜 여태 안먹었나 후회가 될 지경이었다.

 

 

TV에서는 뭔가 스펙터클한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계급간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 군사 쿠데타와 군부 독재, 만달레이와 바간의 유적을 조망하고 미얀마 전통문화와 소수민족을 다루다가 인연과 환생을 얘기하고 인과응보를 암시하며 권선징악하는 와중에 모바일과 AI까지 아우르는 어마무시한 영화였다. 아아, 이동네에서 도깨비 방영하면 대박나겠군. 아아, 저렇게 갑자기 고대 인도로 가서 흰두 신화를 다루는군. 아아, 이동네에서는 안경은 쓰지말고 수염을 길러야 멋쟁인가보군. 그러다 문득 호기심에 찾아보니, 그럼 그렇지, 미얀마 영화가 아니라 인도 영화였다. 어쩐지, 아무리 민주화됐다고 해도 군부독재를 다루는 영화라니, 이상하다 했어, 혼자 끄덕이며 보고 있으니 호텔 직원들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볶음국수 최고야, 엄지손가락을 보여주고 프론트로 내려갔다.

 

 

데이투어를 하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어제밤의 청년은 피곤에 쩐 표정으로 맥없이 팸플릿을 내밀었다. 택시투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 제대로 된 힌글리시를 구사했다. 플러스, 내 발음을 거의 못알아들었다. Passport와 Possible이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어제밤에는 흥분 상태라 몰랐는데, 와, 어떻게 서로 의사소통했나 싶을 정도였다. 결국 필답으로 택시투어를 부탁했다. 잠시 기다리니 기사님이 오셨는데, 다행히 대화가 가능했다. 운전자와 필답을 하지는 않아도 됐다. 만달레이의 유적들을 돌아보고 버스터미널에 가고 싶어요. 기사님과 악수를 나누고, 프론트의 청년에게 손을 흔들고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서 뒹굴다 졸다 열두시가 되어 프론트로 내려갔다. 고마운 청년에게 팁을 넉넉히 주고 택시에 짐을 실었다. 청년은 여전히 피곤에 쩐 얼굴이지만 환한 표정으로 호텔 밖까지 나와 손을 흔들었다. 조금 뭉클했다.
 

 

코스는 전적으로 택시기사님께 맡겼다. 보고싶은 곳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세요. 기사님은 만달레이힐로 차를 몰았다.

 

 

꼬불꼬불 산길을 한참 달린 차는 에스컬레이터 건물 앞에 멈췄다. 올라갈때는 편히 올라가라는 얘기였다. 에스컬레이터라니 좀 이상하군, 어정쩡한 자세로 두리번거리며 정상에 도착하니 수짜웅파예 파고다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은 화려한 장식들 사이로 고양이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한바퀴 돌며 풍광을 살피니, 해발 236m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근사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왜 이곳을 꼭 들르라고들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아마도 공양을 하는 것이겠지, 왁자지껄 웃으며 그릇을 닦는 가족들과 눈인사를 하고 한쪽에 앉아 바람을 느꼈다.

 

 

 

 

 

 

 

 

 

 

 

 

 

 

내려올때는 계단길을 골랐다. 상점들과 작은 사원이 있었지만 딱히 구경거리는 없었다. 다들 낮잠을 자러 갔는지 상인들도 보이지 않았다.
 

 

 

 

 

 

 

 

 

 

 

계단 아래에서 기사님을 만나 짜욱도지 파고다로 향했다.

 

 

입구가 작아 사원의 규모도 작을 줄 알았지만, 안쪽으로 깊고 넓은 공간이 나왔다. 사원 분위기는 제법 소박했는데, 미얀마에 와서 본 사원 중 가장 대중적인 곳 같았다. 동쪽으로 난 목조건물에서 고양이들과 놀다가 본관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부처를 찾아 물을 부으며 한바퀴 돌다보니 뒷뜰에 거울이 잔뜩 달린 정체불명의 시설이 있었다. 이게 뭘까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니 한 젊은이가 다가왔다. 이거 타나카에요. 헐? 타나카가 나무였네. 당황한 표정을 보더니 젊은이는 이렇게 하는거에요, 나무에 물을 뿌리고 슥슥 문질러서 얼굴에 바를 수 있는 크림을 만들어줬다. 호오, 고맙습니다. 젊은이는 생긋 웃더니 자기 얼굴에도 타나카를 잔뜩 발랐다. 나중에 보니 타나카를 바를 수 있는 시설은 남자용과 여자용이 구분되어 있었다. 여자용 시설에는 앳된 얼굴의 아가씨들이 열심히 거울을 보고 있었다.

 

 

 

 

 

 

 

 

 

 

 

 

 

 

 

 

 

 

 

 

 

 

 

 

 

 

 

 

 

 

 

 

여행을 다닐때면 할머니께 드릴 부처를 모셔오곤 했었다. 이곳 저곳에서 모셔온 부처가 제법 많았는데, 미얀마에서도 부처상을 눈여겨보곤 했었다. 양곤과 바간에서는 딱히 맘에드는 걸 찾지 못해 걱정하고 있었는데, 본관 끝자락에서 근사한 조각으로 가득한 공방을 찾아냈다. 젊은 주인의 친절한 설명 덕에 향나무와 타나카, 마호가니를 구분할 수 있게 됐고 용도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도 이해하게 됐다. 몇몇 조각들은 정말 너무 근사해서, 와, 이걸 가져갈 수만 있다면 돈은 문제가 안되겠다 싶은 것들도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쨌든 망가뜨리지 않고 무사히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은 것으로 부탁했다. 젊은 주인은 꼼꼼한 손길로 포장해서 건네주며 말했다. 할머니께 좋은 선물이 될거에요. 기분이 좋아졌다.

 

 

사원을 나와 차를 타고 만달레이 로열 팰리스로 향했다. 이름은 황궁이지만 오랫동안 군부대 주둔지였다고 했다. 기사님은, 식민 시절 영국군이 주둔했었고 현재는 미얀마군이 주둔한다고 알려줬다.

 

 

입구에서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지어 여권을 맡기고 있었다. 좀 귀찮다 싶었는데 기사님이 손을 흔들자 그냥 통과가 됐다. 가이드투어는 이런게 편하군.

 

 

성은 꽤나 큰 규모였지만 군대가 주둔하다보니 접근할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었다. 한가운데의 목조건물들은 일본(그럼 그렇지!)이 태워버려서 최근 복구하고 있다는데, 신기하게도 우리 경복궁과 느낌이 비슷했다. 아마도 칠의 색깔과 처마 때문인 것 같았다. 사실 샨족의 얼굴을 봐도 그렇고 몇몇 미얀마인들은 우리와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 미얀마와 우리는 뿌리가 어딘가로 이어진데가 있나 생각도 들었다. 황궁을 천천히 돌아보고 사람들을 구경하다 차로 돌아갔다.

 

 

 

 

 

 

 

 

 

 

 

 

 

 

 

 

 

 

 

 

 

 

 

 

 

 

 

 

 

 

 

 

 

 

 

 

 

 

 

 

 

 

 

 

 

 

 

 

 

 

 

 

 

 

 

 

 

 

 

 

 

 

 

 

 

 

 

 

 

 

 

 

 

 

 

 

 

기사님은 나름대로 투철한 직업의식이 있는 것 같았다. 쉐난도 사원으로 가기 전 만달레이힐의 정문으로 안내하더니 거대한 사자상을 찍으라고 촬영 포인트를 알려주셨다. 좁은 계단에 올라가 셔터를 몇 번 누르니 밑에서 기다리던 기사님은 엄지를 세우고는 빨리 다음 장소로 가자고 했다. 하하.

 

 

쉐난도 사원은 수많은 부조와 정교한 조각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목조건물이었다. 미얀마의 사원들은 보통 웅장하고 거대했는데, 이 사원은 작고 예뻤다. 조각기술도 캄보디아의 반띠아이스레이에 비견할만큼 대단해서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감탄이 나왔다. 건물을 떠받들고 있는 네 방향의 나가상을 보며, 역시 캄보디아와 연결된건가 생각도 들었다.

 

 

 

 

 

 

 

 

 

 

 

 

 

 

 

 

 

 

 

 

 

 

 

인근의 꾸도더 파고다로 향했다. 총 729개의 비문에 트리피카다를 새기고, 그 비문들을 하얀색 파고다들이 감싸고 있는 곳인데, 마치 거대한 묘지처럼 보였다. 그래서인지 파고다 사이를 걷다보니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파고다에 기대어 앉아 책을 읽는 젊은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비문들을 다 읽으려면 500일 쯤 걸린다는 얘기가 묘하게 겹쳐보였다.

 

 

 

 

 

 

 

 

 

 

 

 

 

 

 

 

 

 

 

 

 

 

 

산다무니 파고다는 아주아주 작은 슈웨다곤 같은 이미지였다. 흥미가 생기지 않아 경내의 고양이 가족과 뒹굴다가 사원을 떠났다.

 

 

 

 

 

 

 

 

 

 

 

 

 

 

 

 

 

 

 

 

 

 

 

 

 

 

 

 

 

 

 

이름도 모르고 구글맵에도 안나오는 작은 사원을 끝으로 데이투어가 끝났다. 짧은 시간 안에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버스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는 터라 기사님에게 맛있는 미얀마식당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기사님은 그 정도야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터프하게 차를 몰았는데 도착해보니 식당 이름이 밍갈라바였다. 우리말로는 앙녕하세요? 정도겠다.

 

 

 

 

 

 

 

 

가게 안에는 트립어드바이저 1위를 달성했다는 상패가 붙어있었다. 헐, 너무 대놓고 외국인 취급 아닌가, 살짝 걱정도 됐는데, 왠걸 볶음국수와 찻잎샐러드가 정말 맛있었다. 결국 맥주를 두병이나 마시고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취기가 올라 기분 좋은 상태로 터미널에 도착했다. 기사님께 감사인사를 하고 터미널 안을 어슬렁거리다 한참 후에야 버스에 올랐다.

 

 

 

 

 

 

 

 

 

 

 

 

 

 

 

 

 

 

 

 

 

 

 

 

 

 

여행의 마지막, 양곤으로 향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