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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백창원
미포 가는 길

백창원 2018-09-08 14:20:12 366

 

이른 아침, 아직 잠에서 덜깬 눈을 부비며 바다로 향했다.

해안도로 건너편 바다를 마주하면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 ‘오른쪽 동백섬 아니면 왼쪽 미포냐’인데, 내 선택은 항상 미포였다.

서로들 잰 체하며 잘난 마린시티 빌딩숲을 뻣뻣한 프레임 안에 우격다짐 단정히 할 자신도 없거니와 안온한 새벽산책의 여유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1

 

 

 

#2

 

 

짙은 안개로 말미암아 미포 가는 길은 모든 것이 흐릿했다.

언제부턴가 바다 가운데 서 있기 시작한 동상이며 안개 속에 버무려진 채 드문드문 걷는 사람들 그리고 잔뜩 웅크린 고양이 같은 해변감시탑과 같은 것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내 사라져버린다. 

 

 

 

 

#3

 

 

끝을 알 수 없이 퍼져있는 거대한 안개뭉치를 보며 이름자 그대로 해운대(海雲臺)인가 싶지만

이는 사실 1100년 전 최치원이 이 곳 절경에 반한 나머지 자신의 호를 따서 동백섬 해벽에 ‘해운대’ 세 글자를 새긴 데서 비롯되었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석벽에건 오사카성 천수각 기둥나무에든 이름 석 자 남기고야 마는 우리네 습성이 실은 그 유서가 깊다고 해야 할까. 

 

 

 

 

#4

 

 

이 생각 한 걸음, 저 생각 두 걸음 하다보니 어느덧 미포에 이르렀다.

미포 회 타운은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에 있는 포구 쪽에 자리하여, 출어한 어선이 잡은 신선한 고기를 판매하는 횟집이 생겨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미포 회 거리의 횟집에서는 미포항에서 출어한 어선이 잡은 자연산의 다양한 어종을 맛볼 수 있고 이곳의 해녀들이 직접 잡은 다양한 해산물도 맛볼 수 있는데,

전하는 얘기로는 해운대를 찾은 일본 관광객이 미포에서 자연산 회를 맛보고 일품이라는 입소문을 내며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바다를 조망하며 회를 즐기고 해운대 앞바다를 오가는 고기잡이배를 볼 수 있어 옛 정취 또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5

 

 

안개 낀 작은 포구는 고만고만한 배들을 품은 채 스산하고,

먹빛 바다는 전날 술잔 돌리며 거나하게 취했던 사내들의 왁자함을 집어 삼킨 채 적막했다. 

 

 

 

 

#6

 

 

 

알싸한 무드가 거슬리지 않았던 나는 발소리 주의하며 미포끝집 막다른 골목까지 쭉 걸어나갔다.

몇 해 전에 비해 골목 양 옆으로 카페와 게이트하우스가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무슨 브런치, 디저트, 루프탑 같은 수식어가 덧대진 카페들이 주를 이룬다.

하나 같이 절제된 매스와 모던한 형태에 화이트 톤을 입혀놓으니 동네 터줏건물의 올드스타일과는 이질감이 확연하다.

물가에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와우산(臥牛山) 자락의 여유로운 심상에 그리 어울리는 풍경은 아닌 셈이다. 

 

 

 

#7

 

 

 

드디어 미포 끝자락. 금지된 지점에서 잠시간 멈추어 섰다.

막다른 길의 끝은 발길을 돌리는 것 외 달리 방법이 없건만 왠지 모르게 순순히 그렇게 해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

객기가 일만큼 막걸리 사발을 들이킨 것도 아니요 사춘기 알량한 반항질 또한 아님에도 그 순간은 그저 길의 끝을 바라보는 일만이 세상에 오직 중요한 일인듯 열심이었다.

 

간신히 추측컨대, 그간 살아오며 세상이 규정한 길과 검증된 안내판이 가리키는 갈래만을 걸어왔던 자신에 대한 반성과 한심함 그리고 뒤 이은 후회와 미련 때문이 아니었나 한다.

내가 바라는 미래를 현재로 만들기 위한 나쁘지 않은 선택의 연속이었다고 믿지만,

잠시 멈춰선 그 길에서의 감정은 이미 눅눅해질대로 눅눅해져 버린 식빵 위에 애써 잼을 발라 먹는 딱 그러한 기분이었다.

이제와 후회인들 미련인들 어찌하오리까만은 숙소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꿀꿀한 마음이 담겨 터벅거렸다.

제기랄, 이럴 줄 알았더라면 마린시티나 한바퀴 돌고 치울걸 그랬나보다.  

 

 

 

 

#8

 

 

* All taken with Rollei35SE, ilford h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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