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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starless
천개의 불탑

starless 2018-12-08 10:13:49 273

 

얼마나 잤을까. 사람들의 기지개 소리에 눈을 뜨니 버스는 휴게소에 도착해있었다. 김이 서린 창을 닦고 밖을 내다봤다. 휴게소라기보다는 주유소가 있는 거대한 주차장이었다. 구글맵을 켰다. 네피도 부근. 바간3)까지는 절반 정도 왔다. 어둑하게 불을 밝힌 화장실에 다녀와 담요를 뒤집어 썼다. 버스 안은, 미얀마 그 어떤 시설보다 낮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추워서 잠을 자기 어렵다더니 정말 그랬다. 그래도 조금 더 자야지, 에어쿠션 베개에 바람을 불어넣고 잠을 청했다.

다시 눈을 떴을때는 어스름이 물러가고 있었다. 지평선으로부터 올라오는 붉은빛이 창을 물들이고 있었다. 달리는 버스에서 맞는 일출이라, 묘한 감흥이 일었다. 휴대폰을 꺼내 동영상모드를 켜고 밝아오는 하늘을 담았다.

버스는 아침 6시 30분 바간터미널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한시간 반 늦은 시각이었지만 다들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었다. 승객들은 시내로 가기 위해 택시 - 자가용 택시 - 기사들과 흥정을 벌이기 시작했다. 피곤하기도 하고 딱히 깎는데 소질이 있지도 않은터라 그 중 한명을 붙잡고 물었다.

뉴바간에 가려는데.
합승없이 텐싸우전.

고개를 끄덕이자 한쪽에 자리한 승합차로 데려다줬다. 양곤에서도 많이 보이던 낡은 도요타였다. 기사에게 호텔 바우처를 보여주고 시트에 몸을 기댔다.

 

 

 

 

 

바간으로 들어가는 게이트에서 티켓을 구입했다. '바간 고고학 지구'라 써있는 티켓은 3일권이었다.

항상 가지고 다니세요.

티켓부스의 직원이 씽긋 웃으며 말했다. 차는 30분 쯤을 달려 호텔 앞에 멈췄다. 가깝네. 배낭을 질질끌며 문을 열자 중국풍의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한쪽에 앉아있던 중국인이 엄청 반가운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저 한국사람입니다.

실망한 표정의 중국인을 뒤로하고 잠이 덜 깬 표정의 리셉션 직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얼리 체크인은 어렵습니다.

레터에 답장도 안하더니. 짐이나 맡아달라고 하자 프런트 맞은 편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되돌아왔다. 도움을 주려는 태도는 아니었다.

하나만 더, 이바이크를 빌리려고 하는데.

잠시 기다리라며 어디론가 사라졌던 직원은 코팅된 명함이 붙어있는 키를 들고 나타났다.

이걸 가지고 바이크샵에 가세요.

이상한 부분에서 친절하군. 그냥 어디어디로 가라고 하지. 고개를 갸웃하고 바이크샵으로 향했다.

역시 잠이 덜 깬 표정의 주인아주머니는 내 키를 보더니 늘어선 바이크 중 가장 깨끗한 놈을 꺼내주셨다. 사실 바이크를 타본 적이 없다. 그냥 모터달린 자전거겠지 생각하고 간 것인데, 막상 앉고보니 작동법을 알 수 없었다. 멋적은 표정으로 이거 어떻게 해야 움직여요? 물어보자 아주머니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이녀석 초보구나. 아무 말없이 깨끗한 바이크를 뺏더니 가장 낡아보이는 바이크를 꺼내주셨다.

이게 전원, 이게 엑셀러레이터, 이게 브레이크, 전조등은 이렇게 켜고, 깜빡이는 이렇게, 오케이?

오케이.

아주머니는 내가 휘청휘청하는 걸 지켜보다가 고개를 젓고 가게 안쪽으로 사라졌다. 골목끝까지 가는데 두번쯤 넘어질뻔 하고나서야 운전이 몸에 익었다. 구글맵을 확인하고 올드바간으로 이어지는 길로 향했다.

 

 

각주 3) 바간은 미얀마 최초의 통일왕조 바간의 수도이다. 서기 1047년 세워졌고, 1287년 몽골의 침략으로 멸망할때까지 번성했다. 바간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와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으로 불린다. 서울 강서구 정도의 크기지만 2,227개의 불탑과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지역인 올드바간과 유적 보호를 위해 주민들을 이주시켜 건설한 뉴바간, 공항과 슈웨지곤파고다가 위치한 냥우 지역으로 구분된다. 바간의 왼편으로는 이라와디강이 흐른다. 강을 통해 북쪽의 만달레이까지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