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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백창원
벌초전야

백창원 2018-09-15 16:46:18 319

2알씩 하루 5번, 5일치를 받았으니 총 50정이다.

약국에서 건네 받았을땐 이걸 언제 다 먹나 싶더만, 대상포진을 잡아야겠다는 의지 하나로 만만치 않은 양이었음에도 성실히 복용을 완료했다.

 

 

대상포진이라는 몹쓸 굴레 하나 지고 살 운명이 되어버렸다.

2년 전 첫 발병 이후 이번이 두번째, 병원에서는 한번 넘은 문턱 두번째부터는 낮은 자극에도 쉽게 넘어올 수 있으니 처방약 잘 복용하고 2주간은 절대 안정하라는 명령이다.

게다가 앞으로는 과음, 과로와 같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정RPM 이상으로 오버런하지 말라는 주의도 따라붙었다.

 

 

사십 밑자리를 깔기 시작하면서 음주만큼은 많이 줄여왔다.

이젠 맥주 한 두캔으로도 족할만큼 소박하다. 하지만 피로와 스트레스 쪽은 콘트롤 할 형편이 못된다.

업무 특성상 농번기에 해당하는 하반기는 밥먹듯 야근이 이어지고 프로젝트라도 겹쳐버리면 생체리듬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결국 평소에 체력을 비축하고 대비할 수 밖에 없는 몸이다. 

 

 

지난 주 아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1년에 한 번, 이맘때 오는 연락은 다름 아닌 ‘벌초 소집명령’이다.

아재의 소집대상은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막내인 나 이렇게 셋이다.

내 사정을 아는 아버지는 올해는 그저 한발 비켜난 곳에서 깔꾸리만 끌라 하셨지만 나는 그것조차 못마땅했다. 

 

 

벌초를 위해 1년에 한번 운용하는 예초기다보니 안전사고 위험이 큰 만큼 요즘에는 벌초대행이 일반화되기도 했고,

용역을 위한 문중돈도 일정부분 갖고 있는 마당에 이제 우리 집도 사람 쓰자는 얘기를 다시 꺼내 보았다.

아버지 말씀이 올해는 벌초 뿐 아니라 봉분 주변 아까시 나무도 쳐내야하니 사람을 부리긴 어렵다며 다음에 생각해보자신다.

더 말해봤자 달라질 게 없음을 알면서도 나는 아버지의 미지근한 반응에 이런저런 억지를 부리며 툴툴거렸다.

막내 된 입장에서 아픈 몸 핑계로 깔꾸리만 깔짝거리게 될 상황을 못내 피하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작용했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행동반경은 과거 촌락단위로부터 지구의 전 영역으로 폭발적으로 확장된 반면,

부계로 질기게 이어지던 씨족의 견고한 줄기는 이제 원자단위로 해체된 후 공중분해되어 버렸고,

조선을 지탱하던 유교적 가치들은 이미 산업화를 통해 변화된 시대적 요구와 메꿀 수 없는 유격이 생겨 삐걱댄지 오래다.

 

몇 되지도 않은 가족들이 선산 벌초를 위해 모이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제사는 가족, 친지가 모인 식사자리에서 고인을 추도하는 메모리얼 데이의 형식으로 바뀔지도 모르고,

이웃 일본처럼 생전에 함께 한 추억이 있는 선대까지만 기리는 것으로 바뀔수도 있을 것이다. 

 

 

어쨋든 우리는 체형이 바뀌고 하는 일이 달라졌음에도 예로부터 전해지는 맞지도 않는 옷을 가끔씩 걸쳐야만 하는 것은 분명하다.

옷은 의복 본연의 기능과 역할이 중요한 것이지 디자인은 주어진 계절과 체형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어떤 옷을 입을지 직접 고를 수 있는 때가 오게되면 나는 기꺼이 고쳐입겠다.

 

 

내일이 벌초다.

아버지가 만류하시더라도 예초기를 들 작정이다.

불편한 몸은 참을 수 있어도 불편한 마음은 참기 힘든 이유다.

편치 않은 마음 정리할 겸, 작년 벌초 때 사진들로 미리 한번 둘러본다. 

 

 

 

 

#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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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1

 

 

 

 

 

 

#12

 

 

 

 

 

 

#13

 

 

 

 

 

 

#14

 

 

 

 

 

 

#15

 

* All taken with leica m6, summicron 35mm 4th and ilford hp5+ black and white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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