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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백창원
베트남 x 컬러필름

백창원 2019-03-09 16:39:17 189

 

나는 왼눈잡이였다. 

왼쪽 눈이 주시안인 경우다. 

주시안이란, 사물의 정확한 위치정보를 얻는데 사용되는데 주로 원거리를 볼 때 쓰인다고 한다.

그래서 양궁이나 사격, 다트와 같은 스포츠에서 주시안이 어느 쪽인지를 아는 것이 운동능력에 영향을 끼친다. 

이제 보니 현역 때 ‘사격왕+포상휴가’ 콤보를 면제받은 것은 ‘오른손잡이-왼눈잡이’의 잘못된 만남 덕분인게 확실하다.

 

몇 해 전만 해도 주시안이 뭔들 상관없었다. 

그러나, 레인지파인더 카메라를 사용하면서부터 40년 주시안을 바꾸고 싶어졌다. 

 

오른눈잡이의 레인지 파인더는 이점이 많다.

 

우선, 간지라는 것이 흐른다. 

#라이카 셀피로 검색되는 구글 이미지의 십중팔구를 오른눈잡이가 전유한 것을 보라. 

한편 사용경험의 관점에서는 카메라 뒷판에 코가 눌리거나 콧김이 서리지 않아 좋다. 

뒷판에 번들번들한 개기름을 닦아보지 않은 자는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마지막으로 카메라는 ‘눈의 연장’으로서 역할에 보다 충실해진다. 

오른눈을 파인더에 붙이더라도 왼눈은 여전히 자유롭기 때문에, 왼눈은 카메라 너머 세상과의 연결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상황변화에 대한 기민한 대처를 가능케 한다.

 

주시안은 3세 이전에 결정되어 평생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색한 오른눈을 뷰파인더에 애써 붙여보지만, 초점을 조절하고 사각 프레임 안에 정렬하는 일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왼눈잡이가 오른눈잡이가 되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중 한쪽 눈에 백내장이 왔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질병 특유의 안구 혼탁증상은 어스름한 저녁보다 밝은 대낮에 더욱 심했다.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여서 결국 좌안에 인공수정체를 삽입할 수 밖에 없었다. 

친구가 실력있는 병원을 소개시켜준 덕에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사진취미의 영역에서는 익숙함과 결별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주시안이 바뀌어버린 탓에 자칫 사진 찍는 일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었던 불안하고 불쾌한 시간이 흘렀다.

 

수술 후 1년.. 과연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그렇게 뷰파인더를 낯설어하던 오른쪽 눈은 언제 그랬냐는듯 자연스럽게 프레임을 맞추고 이중상이 합치되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지독한 제약이 변화의 강력한 추동력이 된 것이다.

 

특히 우안 레인지파인더의 효용은 베트남에 와서야 제대로 체감할 수 있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한데 뒤섞여 어수선한 호이안 올드타운에서 왼눈은 촬영자의 안전을 확보하는데 기여했다. 

 

스냅의 타이밍은 즉각적이기보다는 대개 짧은 기다림을 동반하기 마련인데, 

이 때 촬영자 왼편의 시야가 확보된 만큼 거리 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충돌사고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었다. 

카메라를 얼굴에 붙이고 천천히 걸으면서 찍는 스니키한 촬영 방식에는 뷰파인더 외의 시야가 반드시 필요하며, 실제 호이안에서도 왼쪽 눈의 도움으로 이마 높이의 삐죽한 철 구조물이나 간판을 피하기도 했다.

'#10 화이바 쓴 남자’라든가 ​​​​​​'#17 길 모퉁이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남자’의 사진 그리고 ‘#21 길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명의 여인’이 그렇게 촬영된 결과물들이다 

 

회상컨데 갑작스런 백내장 그리고 이어진 수술, 

비록 근시긴 했어도 비교적 건강하게 주어진 시야에 대해 아무런 불평불만 하지 않았던 나였는데.. 우울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다시 카메라를 들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화장실 스위치 키고 끄듯 쉽지는 않았지만, 뭉근한 노력은 마침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새로이 장착한 인공수정체는 스펙으로 따지면 천연의 그것과 결코 비할 바 없다. 

눈 한쪽은 남은 평생 단초점으로 고정되어 버렸고 밤이면 온갖 광원들이 고리모양으로 번져보인다.

하지만 미련은 없다. 

좌안 수정체를 대신해 우안 레인지파인더를 얻었기 때문이다.

 

잃고 얻음에 있어 교환의 가치가 매번 등가일 수는 없다. 

크게 잃고 적게 얻을 때도 있고 적게 잃고 크게 얻을 때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운수총량의 법칙’을 믿으련다. 

이제는 얻는 것보단 잃는 일에 익숙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므로.

 

그나저나 어디 에무십육 실탄사격 한번 땡겨볼 데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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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leica m6, summicron 35mm f2 or summicron 50mm f2, fujicolor superia 400, kodak portra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