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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백창원
베트남 x 흑백필름

백창원 2019-03-01 08:33:17 245

 

 

관광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그곳의 풍경, 풍습, 문물 따위를 구경함’이지만, 한자어 그대로 풀어보면 ‘빛을 본다’는 뜻이 된다.

빛을 본다는 행위는 다분히 사진적인데, 18세기 초 사진이 발명된 후 여행에서 사진이 빠질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지난 1월, 다낭 3일-호이안 3일 일정으로 베트남 여행을 준비하면서 꽤나 고민스러웠던 부분은 다름 아닌 ‘어떤 필름을 얼마나 가져가야 하는지’였다. 

아마도 디지털카메라였다면 쓸데없을 질문이었을게다. 오히려 메모리카드와 배터리의 개수가 질문의 주인공이었겠지. 

 

나의 아날로그적 자문에 대한 자답은 ‘호이안은 컬러, 다낭은 흑백’이었는데, 스트리트 뷰로 본 호이안은 푸른 하늘과 빛 바랜 머스타드빛 올드타운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던 반면 다낭은 온통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채워진 무채색의 도시이었던 이유다.

 

디지털에 익숙한 이라면 나의 고민이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컬러로 찍고 필요하면 나중에 흑백으로 바꾸면 그만인 일을 말이다. 

그렇다. 하지만 이것은 디지털에 한정했을 때만 해당하는 말이다.

디지털 Raw촬영을 상정한다면 흑백사진과 컬러사진은 촬영 이후에 결정된다. 

즉, 셔터를 누르는 시점에는 컬러냐 흑백이냐의 선택보다 촬영 당시 렌즈 앞에 놓인 빛과 그림자, 질감과 색채를 최대한 전기적 시그널로 변환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단 하나의 이미지 획득장치만을 갖는 디지털카메라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반면, 필름은 다르다. 

흑백과 컬러필름은 겉보기의 색표현 차이 뿐 아니라 구조적, 화학적으로 완전히 구분된다. 컬러필름은 흑백필름이 발명된지 100년이 지난 뒤에야 실용화된 것만 보아도 이들 간의 기술적 차이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필름이라 할지라도 컬러로 촬영한 후 디지털과 같이 흑백으로 변환하면 된다지만, 흑백필름은 흑백필름만의 관용도가 가져다주는 톤과 특유의 입자성 그리고 각각의 필름들이 갖는 고유한 렌더링은 간편한 변환의 ‘꼼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상식적인 이야기로 흑백필름으로 촬영된 사진은 컬러로 역행되지 않는다. 

그래서 흑백필름을 로딩하면 사진가는 세상을 오직 흑과 백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색을 덜어낸 사진가의 시야는 필연적으로 톤과 질감 그리고 세상의 역동성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본래적 한계가 지극한 장점이 되는 순간이다.

 

다낭에 머무는 3일 동안 일포드 HP5+ 흑백필름만을 사용했다.

미케해변에 위치한 숙소에서 반경 2km가 출사지였고 그 중 하루는 촬영하는 아침 내내 소낙비가 내리기도 했다. 

 

이른 아침, 호텔을 나서면 동남아 특유의 습한 바람이 느껴진다.

수평으로 반듯하게 구획된 도로와 수직으로 쭉쭉 뻗은 빌딩들은 자본주의가 가꾸는 욕망의 숲과 들판. 인구 100만의 도시는 여전히 성장 중이다. 

 

해변가 호텔 클러스터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서면 금세 베트남의 속살을 만날 수 있다.

공산주의적 평등이 낳은 레고블록 같은 단출한 주택가는 오토바이와 자전거들의 아늑한 쉼터였고, 베트남 전통모자인 농을 쓴 할머니는 Pho 한 그릇 턱 끝에 붙이고는 비를 피해 집으로 종종걸음한다.

 

골목과 골목사이에서 어디로 이어질지 모를 미로같은 입구를 발견했다.

비록 이국의 낯선 땅이지만, 길은 반드시 통한다는 믿음은 과감하게 방향센서를 끄고 어드벤쳐모드로 전환할 수 있는 용기를 마련해 주었다. 

입구로 들어서자 골목 안쪽은 한층 어둡고 좁았으며 곳곳에는 물이 고여있었다. 시선은 바닥에 고정한 채 물 웅덩이를 간신히 피하며 길이 생긴대로 흘러들었다. 이윽고 어둑한 골목 끝에서 작은 공터를 만날 수 있었다. 

그 곳은 밀집주택 가운데 섬처럼 조성된 공동묘지였다. 한 평생 해변에 살던 이들은 죽어서도 모래사장 뒷 켠에 몸을 뉘었다. 개중에는 부부가 나란히 누운 무덤도 보였다. 

빛과 어둠이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인 것처럼 삶과 죽음 또한 그러하다는 사실을 그 공간은 말하고 있었다.

“메멘토 모리”적 공간이다.

 

그렇다고 주어진 삶을 지속해야 하는 숙명에 죽음을 동경할 수는 없는 일.

이승과 저승 사이의 경계로서 철재펜스는 골목과 묘지 사이를 엄혹하게 구분짓고 있었다. 

 

마주 오는 사람을 위해 서로의 어깨를 조금씩 양보해야 하는 폭 좁은 골목은 이처럼 언제나 매력적이다.

인간적인 통행법 만큼이나 그 속은 사람사는 냄새로 풍기기 때문이다. 

 

여행이 끝난 후 우선순위 1번은 흑백필름을 현상하는 일이었다.

스캔된 JPG 이미지를 넘겨보면서 흑백필름을 선택한 나의 결정이 그리 나쁘지 않았음을 안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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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aken with leica m6, summicron 35mm f2 or summicron 50mm f2 and ilford hp5+ black and white fi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