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er::97d67d5a-909b-457f-abbe-5313f8215e81

여행

Starless
폭우

Starless 2018-12-24 20:56:00 77

 

슈웨산도를 지나 너른 들판이 펼쳐지는 길로 들어섰다. 담마얀지까지 가는 길은 포장상태가 좋지 않고 유독 흙모래로 덮여있었다. 몇번이고 미끄러지는 뒷바퀴 덕에 휘청대다 이바이크의 속도를 줄였다. 십여분을 달리자 들판 한가운데 불쑥 사원이 나타났다.

바간의 사원들은 멀리서는 작은 탑처럼 보이는데 막상 다가가면 압도적이기 일쑤였다. 아마도 평원에 듬성듬성 있는 탓이겠다. 담마얀지 역시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입구에서 입을 헤에 벌리다보니 나무에 걸린 마리오네트가 눈에 들어왔다. 네팔에서 본 녀석들과 모양도, 색도 비슷했다. 꽤 먼 거리인데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있는걸까 궁금해졌다. 사원의 안쪽으로 들어서자 입구에서 한 남자가 자기 작품이라며 바닥에 그림을 펼쳐 보여줬다. 그림상인이겠지. 고개를 흔들자 미소지으며 안쪽의 통로를 가리켰다. 저쪽이 시원할거에요. 사원 안쪽을 돌며 네 방향으로 자리잡은 부처를 뵙고 남자가 가리켰던 곳에 앉았다. 살랑살랑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넸다. 고맙습니다.

 

 

 

 

 

 

 

 

 

 

 

 

 

 

 

 

 

사원을 나와 길을 따라 조금 더 이바이크를 몰았다. 길의 끝에 놓인 작은 사원은 폐쇄되어있었다. 이곳도 올라갈 수 있는 곳은 아니네. 구글맵을 켜고 일몰언덕이라 이름붙여진 전망대로 향했다.

언덕이래봤자 평지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었다. 이곳에서의 일몰도 그다지 감동적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난민타워로 가봐야하나, 두리번거리다보니 커다란 나무 아래 노점상이 보였다. 이바이크를 한쪽에 대고 다가가니 아주머니가 두 팔을 벌려 환영인사를 하고는 그늘 아래 탁자와 의자를 펼쳐주셨다. 앉으라는 손짓도 잊지 않으셨다. 

 

 

영어는 거의 못하시는 것 같았다. 코코넛?이라고 하길래 진열된 물과 콜라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주머니는 아이스박스에서 물과 콜라를 꺼내 마른 수건으로 슥슥 닦더니 건네주셨다. 돈이 든 지갑을 펼쳐 보여드리니 적당한 지폐를 가져가고는 동전을 거슬러주셨다.

 

 

 

 

 

나무그늘 아래 비스듬히 앉아 풍경을 바라봤다. 유적군이라기보다는 어딘가 농촌을 떠올리는 풍경에 고개를 갸웃하는데, 딸로 보이는 꼬마아가씨가 나타나 아주머니와 교대했다. 아주머니는 안쪽의 그늘로 물러앉았다. 코코넛! 코코넛 드세요! 물도 있어요! 시원한 물이에요! 한참을 소리치는데 소리가 제법 당찼다. 눈길이 마주치자 씽긋 웃는 얼굴이 예뻤다. 착한 아이구나. 사진 한장 찍어도 될까? 물론이죠! 미소짓은 꼬마아가씨를 담고 가게를 떠났다. 안녕히계세요. 고맙습니다. 멀리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손을 흔들었다.

 

 

난민타워로 방향을 잡았다. 큰길로 가려면 다시 슈웨산도로 돌아 나가야하는 것 같아 좁지만 빠른 길을 선택했다. 오래지 않아 오른편으로 피아짯지파고다가 보였다. 아침 일찍 움직인 탓에 시간은 넉넉했다. 

 

 

 

 

 

 

 

 

 

 

 

바이크를 돌려 다가가보니 역시나 거대한 사원이었다. 사정을 봐주는 일은 없군, 중얼거리며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네 방향으로 모신 부처를 뵙고 나오니 입구의 간이 건물안에 상인들이 보였다. 그 중 할머니 한분은 먹어보라며 과자들을 집어주시는데 한결같이 엄청 달았다. 와, 이걸 과연 먹어도 되나 싶은 농밀한 맛이었다. 점심으로 먹어볼까 싶어 한봉지를 주문했다. 400원. 할머니께서는 카메라를 보여드리자 포즈도 취해주셨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길을 더 달리자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한쪽에 ’구경하는 곳’이라는 팻말이 서있었다. 굳이 들르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길을 재촉했다. 조금 더 달리니 사원터로 보이는 폐허가 나타났다. 어디선가 나타난 버스에서 우루루 고등학생 쯤 되어보이는 아이들이 내렸다. 폐허를 점령하고 저마다 셀피에 열중하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맞은편의 노점상에서 바지 한벌을 구입했다. 이거 Japanese Quality야. 젊은 여주인은 희안한 표현으로 상품의 우수성을 과시했다. 하하, 그렇군. 조금은 화려한 무늬의 바지를 사서는 과자봉지에 구겨넣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 바지라면 론지를 입지 않아도 되겠지.

 

 

 

 

 

길은 다시 넓은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냥우 방면과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서북쪽으로 향하자 길의 끝에 리조트가 나타났다. 고대 유적과 리조트라, 어쨌든 수요가 있는 걸까. 리조트의 왼편으로 거대한 높이의 난민타워가 보였다. 생각보다 더 높네. 건물로 들어가 입장권을 샀다. 5달러짜리 입장권은 하루 단위로 이용할 수 있었다. 몇번이고 들락거려도 된다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타워의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한 층 더 올라가니 넓게 트인 전망대가 나왔다. 와, 이거 근사하네. 사방으로 트인 전망대에서는 올드바간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열기구를 굳이 타지 않아도 되겠는걸. 잘 찾아왔다는 생각에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일몰은 여기서 보면 되겠다, 일단 숙소에 가서 조금 쉬고 돌아와야지. 들뜬 기분으로 타워를 내려와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돌아올때는 큰길로 달렸다. 어쩐지 길을 헤매는 바람에 슈웨지곤 앞길도 지나고 낡은 게스트하우스가 즐비한 거리도 지났지만 길이 좋아서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따. 심드렁한 표정의 프런트에게 인사하고 방으로 향했다. 괜찮은 시설이었다. 방도 넓고 에어컨도, 욕실도 훌륭했다. 잠시 낮잠을 자고 일몰 시간에 맞춰 다시 난민타워로 향했다.

 

 

낮에 구입한 티켓을 보여주니 직원이 곧 마감시간이라며 회수해버렸다. 인증샷도 안찍었는데. 입맛을 다시며 전망대로 올라갔다. 

낮에 왔을때는 한무리의 젊은이들 외에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있었다. 아무래도 좀 소란스럽군. 사이에 끼고 싶지는 않아서 한걸음 물러나 벤치에 앉아있는데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일몰언덕에 가서 드론이나 띄워야 하나, 난감해졌다.

오후까지 맑던 하늘에 해질 무렵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이래서야 일몰이고 뭐고 글른 것 같았다. 열기구는 시즌이 아니어서 못타고, 파고다는 올라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괜찮은 대안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늘은 이 모양이고, 갑자기 우울해졌지만 여행이라는게 그런거니까, 고개를 흔들고 짐을 챙겨 숙소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 2번국도에 들어서자마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먹구름은 어느새 비구름으로 바뀌어있었다. 숙소 방향으로는 더 두꺼운 구름이 떠있었다. 헐. 길가를 둘러봤지만 비를 피할 곳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을까지 서두르자 싶어 엑셀러레이터를 당기는데, 계기판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배터리 로우. 헐. 배터리 게이지는 20%를 가리키더니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바이크의 속도도 그에 따라 줄어들더니 시속 10km 까지 떨어졌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는데, 이대로 멈추면 아주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들 때 쯤. 작은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바이크샵이 있는 마을이었다. 그래도 맥주는 사야지, 일단 근처의 마트에 들러 맥주를 사고 바이크를 질질 끌고 바이크샵으로 향했다. 샵에는 젊은 아가씨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배터리가 떨어졌어요.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애걸을 하자 방긋 웃는데 구세주라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친절하며 전능하신 샵마스터느님께서는 내 바이크샵에 전화를 해주셨다. 불과 15분도 안돼서 나타난 바이크샵 점원은 새 바이크를 건네주고는 내 이바이크를 가져갔다. 저걸 어쩌려는거지, 궁금해하는데 선뜻 올라타더니 시속 10km로 길 저편으로 사라졌다. 헐. 저 속도로 간다고? 가다가 배터리가 떨어지면? 비가 올텐데? 황당해서 쳐다보다가, 아, 나도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도 빨리 가야지, 출발했지만, 역시나 폭우를 만났다. 그것도 2번국도 한가운데서.

 

 

미얀마의 폭우는 대단했다. 가시거리 1m 가 농담이 아니었다. 흔히 샤워라고 부르는 수준의 폭우가 끊임없이 내렸다. 스콜이 아니었다. 하이빔을 켜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2번국도를 달리는데, 천둥과 번개가 치더니 도로의 가로등이 모두 꺼져버렸다. 하하... 간신히 띄엄띄엄 보이던 도로와 숲의 경계마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잠시 후 휴대폰의 네트워크도 먹통이 됐다. 구글맵이 작동을 멈췄다. 하하... 억지로 달리다보니 아마도 마을인 것 같은 곳에 도착했지만, 역시나 칠흙같은 어둠속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들어가버렸는지, 도움을 처할 방법도 없었다. 비를 피할 처마도 보이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가야지 생각하고 도로를 달렸지만, 결과적으로 호텔 근처까지 두시간 여, 마을을 네 바퀴나 돈 후에야 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물에 빠진 생쥐 꼴로 호텔에 들어서자 우와, 이 빗속을? 이라는 표정의 프런트맨이 수건을 건네줬다. 하하...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하고 캔맥주를 꺼냈다. 참 파란만장하다. 이러고 다녀도 되는걸까. 얼마나 대단한 인연이 되려고 이러나.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맥주를 사오기를 잘했네. 2캔 째를 마시다 문득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