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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백창원
호이안의 남쪽

백창원 2019-04-11 11:41:09 341

 

여행 마지막 날이다. 

다시 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은 꼭두새벽부터 잠을 설치게 하였다.

 

 

(왼쪽 불 밝힌 건물이 내가 묵었던 숙소)

 

 

호텔을 빠져나온 나는 야구모자를 푹 눌러쓴 채 호이안의 남쪽으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호이안 첫 날 촬영한 사진, 깜낌철교는 3년 전 만들어졌다고 한다)

 

 

서부 산악지대에서 발원하여 동쪽 남중국해로 흐르는 투본강의 하류는 지류가 복잡한 탓에 수많은 섬들을 품고 있다.

나는 지금 그러한 내륙섬 중 하나인 깜낌섬(Cẩm Kim Island)으로 가는 길이다.

 

 

 

 

깜낌철교를 건너면 북적거리는 호이안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한적하고 여유로운 전원 풍경이 펼쳐진다.  


 

 

 

 

 

 

 

깜낌철교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높이에 비해 길이가 짧은 다리 하나를 마저 건너면 뚝방길 따라 양쪽으로 길이 뻗어 있었고, 

나는 50미리 주미크론 까치발에 검지를 걸친 채 마을 속으로 곧장 걸어 들어갔다. 

 

 

 

 

 

푸르스름한 새벽녘 노란 감귤 화분이 선명한 집을 마주하였는데,
그 순간 한 소녀가 미닫이문을 열고 나왔고 나는 지체없이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눌렀다. 

비록 초점은 빗나갔지만, 파인더 사이로 마주친 아이의 눈빛은 잊히지 않는다.  

 

 

 

 

 

감귤하우스를 돌아나와 촌집 몇 개를 더 지나면 다시금 널찍한 논밭이 펼쳐진다. 

지평선과 맞닿은 신작로 위로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무척 분주해보였지만, 멀찌막이 떨어져 관조하는 1인칭의 풍경은 평화롭기만 하다.

 

 

 

 

6시를 조금 넘긴 시각, 하늘은 금방이라도 뜨거운 해를 뱉어낼 듯 울그락 불그락 잔뜩 상기되기 시작했다.

멀리 던진 시선을 지근으로 끌어당기자 논에서 일하는 농부가 시야에 포착되었다.

 

 

 

 

 

나는 논두렁길을 따라 그에게 다가가보기로 했다. 

아침 이슬이 맺힌 논두렁은 생각보다 미끄러웠고, 낭패를 당하지 않으려 무척 조심했다.

등을 지고 서있는 탓인지 나는 그의 인식 테두리 밖에서 잡스런 풀 뽑기에 여념 없는 농부를 한동안 관찰할 수 있었다. 


 

 

 

 

나는 농로를 따라 계속 걸었다.

이번엔 바구니에 든 무언가를 논에 뿌리는 농부에 마주섰다. 볍씨를 직파하는 모양이다. 

별도의 못자리에서 모판을 길러낸 후 본래 논에 이앙하는 과정이 생략된 형태이다. 물과 볕이 풍부한 환경에서 적은 노력으로 넓게 경작하는데 유리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한국과 베트남의 위도의 차이만큼이나 농촌의 1월 풍경은 사뭇 달랐다.

 

호텔을 나서며 로딩한 컬러필름은 이 컷을 마지막으로 모두 소비했다. 
컬러 1롤, 흑백 1롤이 이제 남은 전부다.

 

 

 

 

둘 중 HP5+의 긴 혀를 뽑은 뒤 카메라 스풀에 말아넣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겨우 시선을 붙들어매야 할 만큼 끝없는 지평선 위에서

검은 버팔로와 하얀 백로는 서로의 휴식을 존중하며 평화로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다가가 보았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겁 많은 버팔로는 경계의 눈빛을 풀지 않는다. 
누가 이기나 잠시 눈싸움을 걸어보지만 역광이라 봐주기로 했다.

 

 


 

목가적 풍경을 양 옆으로 낀 채 소실점을 향해 걷는다. 
간간히 스치는 오토바이와 낯선 여행자는 곁눈질로 색다른 서로의 아침 표정을 확인하였다. 

길은 마침내 어느 마을로 나를 연결해주었다 

 

 

 

 

 

목가적 풍경이 지루해진 탓일까. 마을 초입의 번잡함이 오히려 반가웠다. 

깜낌시장 앞 노천카페에 마을 사람 서넛이 모여 앉았길래 잠시 쉬어갈겸 나도 카페로 들어섰다. 
  
 

 

 


(사내들의 수다도 만만치 않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그것도 메뉴 가격이 당장 확인되지 않는 가게라면 주문 전 반드시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

다낭 노천카페에서 마셨던 만동짜리 커피를 기준점으로 주인 아주머니한테 커피 한 잔 가격을 물었다. 
잠시 머뭇한 후 툭 던지듯 2만동 그런다. 

커피를 마시던 남자들의 짓꿎은 웃음이 따라왔고, 주인도 겸연쩍었던지 같이 웃는다.
낯선 여행자에게 붙는 마을 입장료라 치기에 따블은 심했다. 

주머니에 든 전 재산이 만오천동이라며 네고를 쳤고 주인장은 오케이 사인을 보내며 자리를 권해주었다. 

 

 

 

 

유리잔에 커피와 곁들이는 차 한 잔을 먼저 서브해주었고, 잠시 뒤 진한 베트남 커피가 따라왔다.   
티비에는 아침마당 같은 베트남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고 남자들은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호기심과 경계가 뒤섞인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나는 생애 단 한번,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이 지닌 디테일에 집중했다. 

샷 추가한 아메리카노만큼이나 커피는 쓰고, 맞은 편 골목을 훌쩍 건너 지쳐들어오는 직광은 눈부셨다.

꼰 다리를 바꿀 때마다 내 몸집에 비해 유난히 작은 플라스틱재 간이의자는 계속 삐걱거렸고, 단 하나의 의미조차 종잡을 수 없는 남자들의 수다는 백그라운드뮤직 마냥 귓등을 스쳐 흘렀다.

 

 

 

 

다시 호텔로 돌아갈 시간, 진한 커피를 마저 비우고 카페를 나섰다.

남은 시간은 마지막 혼 롤인 수퍼리아 400이 기록해주기로 했다. 

 

 

 


(베트남 여인들의 생활력을 상징하는 전통지게 가잉)

 

 

돌아가는 길은 왔던 길보다 늘 짧고 가깝게 느껴진다. 

걸어오는 동안 길이 수축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 말이다. 
물론 기분탓일 뿐이고, 인간의 인식이란 얼마나 불완전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누군가 그러더라. 세월은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처럼 흐른다고. 

처음엔 풀어도 풀어도 그대로인 것 같은 휴지가 중반을 넘어가면 급격하게 줄어드는 경험에 빗댄 은유다. 

 

 

 

 

여행자의 길도 마찬가지여서 초행의 길은 모든 것이 낯설고 이질적이어서 감관을 최대한 개방하고 인식의 주기가 매우 촘촘하게 나뉠 수 밖에 없다. 

반면에 돌아가는 길은 이미 기록된 정보를 확인하는 정도에서 인식의 주기가 뜸해지는데 이는 아무래도 뇌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한 에너지 세이빙 메카니즘이 작동하는 것일게다.

 

 

 

 

 

인식의 주기가 촘촘하다는 것은 단위 시간에 기록된 자극과 이벤트가 돌아갈 때의 그것보다 많다는 뜻이다.

절대적인 쿼츠 진동자를 생체기관으로서 지니지 못한 인간은 반대로 자극과 이벤트 빈도를 기준으로 상대적인 시간을 비교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시간의 속도 차이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10분동안 100개의 자극과 10개의 자극이 각각 주어졌다고 했을 때 자극의 빈도를 기준삼아 시간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100개의 자극 쪽이 10배로 시간이 긴 것처럼 느껴지게 되는 이치다.

 


 

 

 

어로를 마친 배 한 척이 집으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농부의 땅에서 태어난 나는 낭만을 핑계로 유목의 삶을 동경하지 않았다. 
안정된 삶을 얻은 댓가로서 회귀의 숙명을 기꺼이 짊어졌다. 

떠남은 돌아옴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낭만이 들어 앉을 여유가 생긴다.

 

 

 

 

 

또 다시 투손 강변,

저녁같은 아침, 일몰같은 일출이 사뭇 낯설다.